경제·금융 경제동향

[데스크 칼럼] 이학인 경제부장, 담론에 갇힌 구조조정

구조조정에 경제 사활 달렸는데

책임주체들 공방으로 허송세월

산업발전 과정 불가피한 성장통

생산적 논의로 전화위복 삼아야

이학인 경제부장이학인 경제부장




어떤 사람이 강가를 걷다가 죽어가는 물고기를 발견한다면 우선 살리려고 노력해볼 것이고 안되면 강의 오염을 막기 위해 그 물고기를 건져낼 것이다. 만약 이 사람이 그와 비슷한 물고기를 잇따라 발견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상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는 지난 2000년대 초 독일 경제가 ‘유럽의 환자’로 전락했을 때 독일 사회학자였던 고(故) 울리히 베크 교수가 당시 횡행하던 논의들은 시야가 좁은 주장들에 불과하며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 말이다.

현재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그리고 조선업체들은 한국 경제의 하류에서 떠오른 죽어가는 물고기다. 구조조정이 경제의 화두가 되고 있다. 구조조정을 이끄는 정부 관료들과 해당 기업 경영자들은 사즉생(死卽生)이라는 비장한 단어까지 동원하고 있다. 사실 표면화된 이번 구조조정의 규모는 외환위기 때와 비교가 안 된다. 당시 수많은 기업이 문을 닫았다. 여기에는 정부 재정 170조원이 투입됐고 수십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번 구조조정은 해운·조선 등 5개 취약업종만이 대상이다. 이 가운데서도 기업의 존폐가 걸린 곳은 해운 2개사와 대우조선해양뿐이다. 나머지 업종은 주채권은행과 해당 그룹이 알아서 자율적 구조조정을 추진하거나 시장에서 인수합병(M&A) 등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다.


하지만 이처럼 폭 좁은 구조조정조차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구조조정을 이끌어가야 할 정부와 한국은행, 이를 법적으로 뒷받침해야 하는 정치권은 말의 성찬만을 주고받을 뿐이다. 경제 수장인 부총리와 구조조정 집도의인 금융위원장은 대통령이 한국판 양적완화의 필요성을 강조하자 한은에 발권력을 동원해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을 대라고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한은은 국민적 합의가 먼저라며 미적거리다가 논란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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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공방은 신물이 날 정도다. 구조조정은 고통의 분담이다. 부실에 책임이 있는 대주주와 채권단, 그리고 해당 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이 고통을 나눠 져야 한다. 특히 일자리를 잃게 되는 근로자들의 문제는 뇌관이다. 여당은 구조조정을 돕기 위해 노동 4법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야당은 4법 가운데 파견법이 비정규직을 양산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여야는 지난 수개월 동안 이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소설가 김훈이 ‘남한산성’에서 묘사한 청나라의 무력 앞에 무너지는 성을 두고 나가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를 놓고 인조 앞에서 담론을 주고받은 주전파와 주화파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현재 조선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는 20만명 수준이다. 이 중 10~20%만 구조조정 대상이 되더라도 그 가족까지 합치면 수십만 명이 고통을 겪게 된다. 이들의 고통을 어떻게 줄여줄 수 있을지,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어떻게 도울지 등의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논의는 빠진 채 이어지는 담론은 공허할 뿐이다.

미국 경제사학자 찰스 킨들버거는 경제 성장과 산업 발전은 끊임없는 구조조정의 연속이며 어느 국가도 국제 분업 체제를 피할 수 없고 한 국가의 비교우위 산업이 끊임없이 이동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구조조정은 필연이고 그 사회가 위기 산업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경제적 번영에서 큰 차이가 난다고 갈파했다. 이 관점에서 보면 현재 구조조정에 대응하는 한국의 점수는 지극히 낮을 수밖에 없다. 지금의 구조조정은 시간을 벌기 위한 수단이다. 경쟁력이 떨어진 산업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해주고 그 사이 신산업이 성장해 이를 대체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금쪽같은 시간을 부질없는 담론으로 날려버리고 있는 한국의 현실이 답답하다. leejk@sedaily.com

이학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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