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실탄 문제를 놓고 맞섰던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참석을 위해 나란히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출국했다. 두 수장이 별도의 만남을 갖고 구조조정 재원 마련 방법에 대해 논의할지 주목된다.
유 경제부총리와 이 총재는 3일부터 오는 4일까지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제19차 동아시아국가연합(ASEAN)+3(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와 ‘제49차 ADB 연차총회’에 참석해 나란히 앉는다. 현재 두 수장 간 별도의 회동은 잡혀 있지 않지만 비공식 대화 채널을 얼마든지 가동할 수 있다.
일단 국내에서 벌이던 설전은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2일 ADB 출장을 앞둔 이 총재는 간부회의를 주재하고 “국책은행 자본확충협의체와 관련해 대외발언을 할 때 관계기관이나 일반 국민이 오해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라”고 경고했다. 기업 구조조정 재원조달을 놓고 한은과 정부가 벌이는 팽팽한 기 싸움에 말려들지 말 것을 이례적으로 당부한 것이다. 이 총재는 “당행의 역할 수행 방안을 다시 한 번 철저히 점검하고 관계기관과도 충분히 논의하라”고 말했다. 지난달 “법 테두리 내에서 구조조정을 지원한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섰다.
한은을 몰아세우던 정부도 한은 달래기로 돌아섰다. 이날 최상목 기재부 1차관은 월례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와 한은은 선제적 구조조정으로 발생하는 금융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이 필요하다는 점과 양측이 가진 정책수단을 포괄적으로 검토해 적절한 대책을 강구해나갈 것이라는 두 가지 점에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 차관은 “(경제에) 전례가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중앙은행의 역할이나 정책수단과 관련해 과거와 다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한은에 대한 압박을 풀지 않았다.
4일 열리는 ‘국책은행 자본확충협의체’ 테이블에 한은을 끌어앉힘에 따라 장외논쟁은 일단락된 모습이다. 그러나 수면 아래로 내려가 보면 각론을 두고는 여전히 이견을 좁히기가 쉽지 않다. 유 부총리와 이 총재의 프랑크푸르트발 메시지에 정부와 시장이 촉각을 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까지 나온 자본금 확충방안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정부가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현금출자’와 정부 보유주식으로 투자하는 ‘현물출자’다. 현금출자는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예산안은 내년도에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고 연내 추가경정예산은 현실적으로 야권의 동의를 얻기 힘들다. 정부 보유주식을 현물출자하는 것은 국무회의 의결만 거치면 된다.
둘째는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해 산업은행(산은법 개정 필요)이나 수출입은행(현행법 가능)에 출자하는 구조다. 마지막으로 산은이 조건부 자본증권(코코본드)을 발행하면 정부 보증을 붙여 한은이 매입하는 방식이 있다. 산업금융채권과 달리 발행조건에 따라 바젤Ⅲ 규제체제에서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정부는 일단 보유주식을 수은·산은에 현물출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은에는 수은 출자와 산은이 발행한 코코본드를 매입하는 방안 등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은은 특정 산업이나 은행 지원을 위해 발권력을 동원하는 것에 난감해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 국채매입으로 ‘무차별적 실탄’을 공급하면 정부가 특정 사용처를 직접 결정해서 쓰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연선기자, 세종=이태규기자 bluedas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