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은 중앙은행의 경기부양 실탄이 거의 떨어졌고 신흥국은 기존의 성장 모델이 한계에 이른데다 여행자(tourist) 투자가들의 자본 유출입 변동성에 노출돼 있어 불안합니다.”
올해 밀컨 글로벌 컨퍼런스에서는 “세계 경제가 단순한 저성장이 문제가 아니라 불안정한 성장이라는 악성 ‘뉴 노멀(New normal)’ 국면에 들어섰다”는 월가 거물들의 경고가 쏟아졌다. 유럽·일본 등 선진국의 경기 약화로 원자재·상품 수출이라는 신흥국의 성장 모델이 깨지면서 위기가 상호 전염되고 있다는 것이다.
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비벌리힐튼호텔에서 열린 ‘밀컨 글로벌 컨퍼런스’에서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수석경제고문은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성장 촉진 수단을 다 써버리면서 글로벌 경제가 갑작스럽게 변하고 있고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 높다”고 말했다. 조셉 훌리 스테이트스트리트 회장도 “미국 금리는 거의 제로 수준이고 다른 선진국도 마이너스까지 떨어졌다”며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에 경기침체가 다시 발생하면 빠르게 탈출할 수 있는 수단이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반면 시중에 넘쳐난 유동성에 자산 가격이 전방위로 오르면서 동시 하락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스티븐 코헨 포인트72 창립자는 “가장 우려되는 일은 많은 투자가가 똑같은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최근 반등한 국제유가, 주식 등이 한번 하락하면 쏠림 현상에 급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올 들어 안정된 신흥시장도 언제 다시 충격을 받을지 모른다는 것이 이들의 경고다. 엘에리언 고문은 “신흥시장 투자가들은 여행자처럼 수영장에서 칵테일을 즐기다가도 조그만 불안한 신호가 있으면 갑자기 공항으로 도망칠 것”이라고 말했다.
핫머니가 고수익을 찾아 떼거리로 몰려다니면서 신흥시장이 자산 거품과 붕괴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티븐 타난바움 골든트리자산운용 설립자이자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몇몇 신흥국 자산을 팔아 차익을 실현했다”며 “(가격이 하락해) 더 나은 매수 기회가 올 것이라고 보고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역시 신흥국 투자의 핵심 위험으로 악재가 나오기 무섭게 자산을 팔아 치우는 여행자 투자가들을 꼽았다.
특히 중국 증시가 경착륙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엘에리언 고문은 “10년 전 미국 주택 버블 때처럼 중국 정부가 주식투자를 장려하면서 과도한 거품이 발생하도록 하는 똑같은 오류를 저질렀다”며 “중국 금융시장이 연착륙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고 뭔가 나빠지는 순간이 오면 매우 큰 가격 변동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중국 경제가 이른바 중진국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엘에리언 고문은 “중국은 개발 단계가 끝나가면서 10대처럼 힘든 전환기에 서 있다”며 “중국이 수출에서 내수 소비 중심으로 경제구조를 바꾸고 있지만 과거 수십년간 경제체질 전환은 겨우 5개국만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신흥시장 불안은 다시 선진국으로 전염될 수 있다. 타난바움 CIO는 “지난해 여름 중국 금융시장이 요동쳤을 때 봤듯이 신흥국과 선진국 시장의 연결성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중국 경제 자체는 5.5~6.5%의 성장률을 달성하며 연착륙할 것이라는 분석이 대다수다. 록크리크그룹의 사니 베치로스 설립자는 “중국은 과거 20~30년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성장세를 기록했다”며 “최근에는 하이브리드·전기차·태양광·정보기술(IT)·엔터테인먼트 등으로 경제를 다변화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최형욱특파원 choihu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