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 앉아 안경을 착용하니 눈앞에 책이 펼쳐진다. 책 속에서 튀어나온 콩은 방바닥에 싹을 틔우고 콩 줄기는 순식간에 자라나 천장을 뚫고 하늘로 솟는다. 방 이곳저곳을 움직이며 줄기를 구경하고 있던 찰나 뚫린 하늘을 바라보니 거인이 나타나 나를 보며 말을 건넨다.
이처럼 현실과 가상을 중첩해 볼 수 있도록 한 기술이 지난 3월16일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센터에서 시연됐다. 이곳에서 열린 ‘게임개발자회의(GDC) 2016’에서 반도체 업체 AMD가 캐나다 증강현실(AR) 전문 회사인 슬론과 함께 ‘슬론Q’를 공개한 것이다.
가상현실(VR)은 실제의 현실이 아닌 사이버공간 속의 허상만을 보여준다면 증강현실은 육안으로 보는 실제 현실 세계의 이미지에 디스플레이 기술 등을 통해 각종 보충 정보를 제공해준다. 이처럼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은 서로 다른 기술이지만 서로 합쳐지면 가상현실의 체감도와 효용성을 한층 높여주는 찰떡궁합을 보여준다. 이 둘을 결합한 기술이 바로 ‘혼합현실(MR)’이다. 구글·애플·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공룡들은 이 두 기술을 결합한 ‘혼합현실(MR)’에 집중하고 있다. 현실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는 증강현실의 장점과 사람의 눈앞에서 몰입감을 줄 수 있다는 가상현실의 특징을 살려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교실이나 방에 태양계를 띄어 교육에 활용하고 영화 ‘아이언맨’처럼 상대방의 단점과 주변 상황들을 그래픽의 형태로 제공 받는 것도 가능하다. 여기에 이동통신기술까지 결합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능까지 추가된다면 실시간으로 환자의 데이터를 공중에 띄어놓고 분석하는 원격 협진도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의 투자은행 디지캐피털은 증강현실·가상현실 시장 규모가 오는 2020년 1,500억달러(약 173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중 가상현실 산업이 300억달러인 반면 증강현실 산업은 1,200억달러로 4배에 달할 정도로 증강현실의 상업적 성장 잠재력은 더 크다. 두 기술이 한층 성숙해 혼합현실 시대가 본격화하면 관련 산업시장 규모는 지금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수도 있다.
다만 국내에서는 증강현실 기술 수준이 많이 뒤처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SK텔레콤의 강상철 미디어테크랩 매니저는 “증강현실은 활용분야도 무궁무진하고 시장 규모도 가상현실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해외 업체들도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해외 주요 기업들에 비해 기술이 2~3년 정도 뒤처져 있어 한층 분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