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품이 높고 바르다 하여 ‘정가(正歌)’라 불렀다. 격한 기교 없이, 맑은소리로 시조를 가사 삼아 만든 우리 고유의 성악. 최근 영화 ‘해어화’에서 주인공 소율(한효주)이 불러 정가를 알게 된 사람도 많을 테지만, 일찌감치 이 노래를 부르며 대중과의 접점을 모색해 온 이들이 있다. 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이수자 김나리와 전수자 김지선·조의선이 2012년 결성한 정가앙상블 ‘소울지기’가 그 주인공이다. “선조들의 사색이 담긴 가사와 맑은 음색으로 관객에게 정가의 매력을 전해주고 싶다”는 소울지기를 서초동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만났다.
“영화를 본 분들이 정가에 관심을 보내주니 감사할 따름이죠. 조선 후기 선비들이 향유한 정가를 이젠 누구나 쉽게 따라부를 수 있는 음악으로 만들고 싶어요.”
해어화에 나와 유명해진 노래 ‘사랑 거즛말이’는 소울지기가 2014년 발매한 첫 음반에서 소개한 곡이다. 조선 중기 문신 김상용의 동명 평시조를 가사로 써 님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기존 정가는 단선율이지만, 소울지기는 과감하게 화성 기법을 가져와 작업을 한다. 서양악기인 피아노·바이올린도 반주에 사용한다. 소울지기의 리더 김나리는 “정가는 전통 음악 중에서도 일부 지식층에서만 성행한 장르”라며 “이를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소울지기 세 명의 멤버는 사제지간이다. 김지선·조의선에게 정가를 가르치고 정가 앙상블을 만들자고 제안한 사람이 바로 김나리다. “‘정가를 전공한다’고 말하면 잘 모르는 분들도 많고, 저희가 설 수 있는 무대도 점점 줄어들어 안타까웠어요. 잘하던 친구들이 결국 다른 일로 옮겨가는 것도 속상했고요. ‘대중과 가까이할 수 있는 음악을 해보자’는 생각을 하다가 정가앙상블을 만들게 됐죠.”(김나리)
반응은 좋았다. 정가를 하는 젊은 예술가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대중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시도까지 더했으니 국악계 안팎에서 호평이 이어졌다. 이들은 2014년 21세기 한국음악프로젝트에서 ‘언약이 늦어가니’라는 곡으로 대상을 받으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세 사람은 성악을 전공하다가 정가로 전향(?)한 공통점도 갖고 있다. 왜 이 노래, 정가였을까. “고음부에서 쓰는 가성을 ‘속소리’라고 해요. 속소리와 진성에 해당하는 ‘겉소리’는 그 색이 정말 뚜렷한데, 이 둘이 어우러져 나오는 소리가 정말 예쁘고 고와요. 가사가 시조인 만큼 노랫말이 담고 있는 감성이 풍부한 것도 매력입니다.”(김지선) “가사는 애절해도 정가를 부를 땐 그 감정을 절제하고 불러야 해요. 절제하며 조금은 느린 리듬으로 아름다운 가사를 전달하는 정가가 참 좋았어요.”(조의선)
바쁘게,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아정(雅正)한 소울지기의 노래는 평온함을 안겨준다. 그 휴식 같은 느낌을 선사하기 위해 만날 치열하게 연구하고 목을 푸는 세 여자. 이들은 “국악팀에겐 ‘전통을 지키는 것’ 못지않게 살아남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며 “대중의 귀를 자극하는 ‘우리의 노래’를 계속 연구해 좀 더 가까이 다가가겠다”고 웃어 보였다.
/사진=권욱기자 ukkw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