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방우영 조선일보 상임고문 별세

한국전쟁 때 폐허된 회사 재건

영욕의 세월 뒤로 한 채 하늘로



‘한국 신문업 창달을 이끈 언론인이자 경영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방우영(사진) 조선일보 상임고문이 8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1928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32년 ‘경영난’을 겪고 있던 조선일보를 인수한 방응모 선생의 친형 방응곤씨의 손자이자 방일영 전 조선일보 회장의 동생이다. 방응곤씨의 차남인 아버지 방재윤씨가 숙부 방응모 전 사장의 양자로 가면서 형과 함께 방응모 전 사장의 양손자가 됐다.

방 상임고문은 서울로 유학해 경성 경신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49년 연세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한 뒤 1952년 조선일보 기자로 입사, 언론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 할아버지인 방응모 사장이 납북되고 조선일보 사옥은 불에 타 폐허가 된 상태로, 고인은 형인 방일영 사장과 함께 회사 재건에 주력했다.


이후 고인은 1964년 방일영 당시 사장이 회장에 임명될 때 대표이사로 취임했으며 1970년에는 사장직에 올랐다. 사장을 맡은 이후 고인은 방일영 회장과 함께 조선일보를 개혁하고 지면을 혁신하는가 하면 ‘월간조선’ ‘월간 산’ ‘월간낚시’ ‘스포츠조선’ 등을 잇따라 창간하거나 인수했다. 1992년에는 국내 신문사 최초로 전국 동시인쇄망을 구축하고 신문제작 전산시스템(CTS) 개발을 완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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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1993년 형 방일영 전 회장의 아들인 조카 방상훈 현 대표이사 사장에게 사장 자리를 물려준 데 이어 2003년에는 조선일보 경영에 참여한 지 40년 만에 회장직까지 내놓고 명예회장으로 물러날 때까지 조선일보를 국내 최대의 신문으로 성장시키는 데 주력했다.

2008년 팔순을 앞두고 출간한 회고록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에서 그는 “대한민국이 탄생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신생(新生)의 감격과 아픔, 격동과 혼돈을 조선일보라는 창(窓)을 통해 목도하고 체험했다. 나의 신문 만들기 55년은 바로 대한민국의 역사와 함께한 세월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고인은 조선일보 상임고문, 연세대 재단 명예이사장, 고당 조만식선생 기념사업회 이사장, 연세대 명예동문회장, 대한골프협회 명예회장 등을 맡아왔다.

1959년 결혼한 부인 이선영 여사와 사이에 아들 성훈(스포츠조선 대표이사 발행인 겸 조선일보 이사), 딸 혜성·윤미·혜신을 뒀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 장례식장, 발인은 12일 오전8시다.

최수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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