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김형철의 철학경영] 당신은 도움을 요청했는가?

< 23 > 외양간 고칠 최적 타이밍은

소 잃고난 후 정확한 진단 가능

스스로 사태 수습할 수 없을 때

먼저 할일은 제대로된 도움 요청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얼마 전 택시에서 탔다가 눈물을 엄청 흘린 적이 있었다. 택시기사의 사연을 듣고 나서였다. 아무리 봐도 기사생활을 오래 한 것 같지 않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눈이 퀭한 채 넋이 살짝 나가 보이는 표정이다.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그는 얼마 전 파산한 중소기업 사장이었다. 휴대폰 부품을 제조하고 있었는데 완성품 업체가 기울어지면서 자기 회사도 재고만 잔뜩 쌓인 채 부도가 났다고 했다. 그런데 공장을 인수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 처분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급한 마음에 핸들을 잡고 있지만 머리는 온통 복잡하고 착잡하다는 것이다. 한강 근처에도 여러 번 갔다고 했다. 이제 자신이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는데 도저히 용기가 나지를 않는단다.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대학 동창인데 과거에는 아주 친했다고 한다. 같이 미팅도 다니고 캠핑도 같이 가고 공부도 늘 옆자리에 앉아 같이 했단다. 지금은 모 전자회사 부사장으로 있어 자신의 사정을 한번 하소연해보면 좋겠는데 도통 용기가 나지 않는단다. “한 번만 도와달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단다. 나는 단호히 말했다. 전화를 하라고. 그래서 “도와달라”고 꼭 말하라고. 사람이 죽음도 생각하는 판인데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런데 조건이 하나 있다. 절대로 돈 빌려달라는 이야기는 하지 말라. 이 친구가 돈을 빌리려 한다는 생각이 들면 만나주지 않을 수도 있다. 대신 “이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를 달라. 네가 나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는 것이 좋겠는가”라고 물어라. 도움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비굴하거나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제대로 도움을 요청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요즘 대학들이 재정적으로 어렵다. 하기야 어느 곳 하나 어렵지 않은 곳이 없지만 등록금이 동결되고 인건비는 올라가고 학생 수는 줄어드니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기부를 받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도 기부를 받아야 살아가는 대학 총장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기부를 받는 방법을 생각해내야 한다. 미국 대학 총장들은 기부금을 얼마나 잘 받느냐가 자신의 능력으로 평가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들도 기부를 입에 달고 살면 잠재적 기부자들이 슬슬 피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미국의 한 유능한 대학 총장은 “기부해달라”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으면서 모금을 잘하기로 유명하다. 어떻게 할까. 우선 잠재적 기부자에게 “절대로 기부해달라는 요구를 안 할 것”을 서약한다. 그래야 일단 안심하고 만나줄 테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로 그 말을 꺼내서는 안 된다. 부자들이 어떻게 하면 기부할 수 있을지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한다. 부자들의 심리에 대한 컨설팅을 받는 것이다. 그러면 여러 가지 방법도 가르쳐주고 심지어 누가 현재 많은 돈을 뜻있게 쓰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정보도 준다. 간단하다.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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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참사가 일어나면 선진국에서는 조사관들이 우선 사실 조사에 들어간다. 정치적 이슈화는 나중 문제다. 원인 규명과 책임소재 파악이 우선이다. 관련 당사자들의 인터뷰를 진행하다가 조사관들이 제일 마지막에 질문하는 것이 하나 있다. 참! 재미있는 퀴즈가 하나 있다. 외양간을 고칠 최적의 타이밍은 언제일까. 정답은 소를 잃고 난 직후다. 많은 학생이 소를 잃기 전이라고 대답하는데 다 틀린 답이다. 소를 잃지도 않았는데 왜 멀쩡한 외양간을 고치는가. 그렇게 고친 외양간은 제대로 고쳐질까. 잃고 난 다음에야 정확한 진단이 나오게 돼 있다. 조사관들이 하는 최후의 질문은 바로 “당신은 도움을 요청했는가”다. 스스로 사태를 수습할 수 없다는 게 분명해지는 시점에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도움을 제대로 요청하는 것이다. 그것은 택시기사도, 대학 총장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도움을 요청했는가?”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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