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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민망한 국립현대미술관의 역대최대 사진전

좁은 관람로, 다닥다닥 붙은 작품, 눈높이 무시한 전시…

서울관 '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展

한국 사진史 30년 정리 기획의도 무색

‘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1989년 이후 한국현대미술과 사진’전 중 신학철,박불똥,플라잉시티 등의 작품이 걸린 2전시실 일부‘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1989년 이후 한국현대미술과 사진’전 중 신학철,박불똥,플라잉시티 등의 작품이 걸린 2전시실 일부


“어이쿠, 죄송합니다.”

발을 밟거나 등이 부딪힌 것을 사과하는 목소리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이곳은 ‘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1989년 이후 한국현대미술과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2전시실. 서울관 개관 이래 첫 대규모 사진전이자 국내 역대 사진전 중 최대 규모인 야심 찬 전시가 1~4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 현대사진을 대표하는 작가 54명의 작품 200여 점이 선보였다.


‘스텝 꼬인’ 관람객이 특히 많은 곳은 2전시실 내 가벽으로 조성된 좁은 공간으로 신학철과 박불똥·성완경·박영숙·플라잉시티 등 다섯 작가의 작품이 27점이나 다닥다닥 붙었다. 급조된 아트페어 부스가 연상될 정도로 관람의 여유가 없다. 제법 사이즈가 큰 작품을 보려 뒷걸음치다 맞은 편에 걸린 작품에 닿을 지경이다. 이곳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이승택의 전체 높이 7~8m에 달하는 초대형 사진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작품 전체를 조망하려면 전시장 반대쪽 끝으로 가야 한다. 이 작품 옆 폭 1m 가량의 모퉁이 벽에는 한국 미술가 중 국제적 인지도가 가장 높은 작가 중 하나인 양혜규의 ‘평상의 사회적 조건’ 10점이 옹색하게 걸려있다. 좁은 터널 같은 곳을 빠져나와 초대형 작품에 눈이 가기 마련인 관람 동선을 따르다 보면 의미있는 작품임에도 못 보고 지나기 십상이다. 바로 옆 엘리베이터 쪽에 전시된 노순택의 ‘내장’ 시리즈 25점은 절반 이상이 관객의 눈높이를 무시한 채 걸려있다. 옛 기무사부지에 조성된 서울관 건립현장에서 발견한 공사 부산물 조각을 내장처럼 보이게 찍은 미술관 소장품인데도 홀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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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밀도가 일정하지 않다는 사실은 근처에 조성된 최재은 작가의 공간과 비교하면 분명히 드러난다. 영상작품 때문에 어둡게 조성된, 그러나 훨씬 널찍한 공간을 최 작가의 6점이 독차지했다. 전시의 시작지점인 1전시실은 상대적으로 ‘우대’받은 작가들의 공간이다. 서정적 풍경사진으로 흑백사진을 예술적 지평을 넓힌 민병헌의 주요작 28점이 걸린 곳은 앞서 신학철 등 5명의 작가가 나눠 가진 좁은 공간의 2배가량이다. 주명덕·배병우·구본창 등 거장의 대작은 수묵화 같은 작품 고유의 정서를 고려해 여유있게 배치됐다.

이지윤 서울관 운영부장이 기획한 이번 전시는 지난 30년간 한국 현대미술사에 있어 사진 매체가 어떻게 미술의 언어와 조우하며 새로운 예술세계를 구축했는지를 조망하고자 했다. △실험의 시작 △개념적 미술과 개념사진 △현대미술과 퍼포먼스 △비평적 지평으로 나뉘어 구성됐지만 사진의 예술화 과정이라는 맥락을 짚기보다는 명성있는 작가의 나열 수준을 넘지 못했다. 가장 활동 왕성한 작가를 엄선한 것은 분명하지만, 이중 태반이 상업화랑 전속이라는 사실은 비단 전시 기획력 부재뿐 아니라 우리 미술계의 한계로도 지적된다. 전시는 7월 24일까지.

/글·사진=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사진작가 민병헌의 작품들이 걸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1전시실 일부사진작가 민병헌의 작품들이 걸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1전시실 일부


‘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1989년 이후 한국현대미술과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전시 일부‘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1989년 이후 한국현대미술과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전시 일부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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