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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휴정PD의 Cinessay-그랜토리노] 인생 마지막의 용기있는 선택

[조휴정PD의 Cinessay] 인생 마지막의 용기있는 선택 <그랜토리노>

영화 그랜토리노 포스터.영화 그랜토리노 포스터.





“너희도 늙어봐라” 예전부터 할아버지, 할머니들께 참 많이 듣던 말입니다. 어른인데, 나이가 저렇게 많은데도 소소한 것들에 집착하고 화도 잘내고 너그럽지도 못한 모습에 실망하는 젊은이들의 표정을 읽고 “너희는 천년만년 젊을줄아냐, 너희도 늙어봐라” 신경질적으로 돌아오던 말이었습니다. 온화하고 너그럽고 지혜로운 노인이 되는 것은 그렇게도 어려울까? 아쉬웠던 의문이 제가 나이가 들면서 풀려갑니다. 젊을 때는 어른들 눈치보느라 제대로 뭘 못했건만 이제는 또 ‘어른이 왜 이러시냐’며 성인군자나 할수있을 완벽한 언행을 요구합니다. 뭔가 조언이라도 할라치면 ‘꼰대’라고 비아냥거리고 아직은 사회에 중요한 사람이고 싶은데 벌써 물러날 때라네요. 이렇게 세상에 대한 섭섭함, 소외감이 ‘화난 노인’을 만드는구나,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그랜토리노>(2008년작,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월터도 맘에 안드는게 너무 많은, 깐깐하고 쉽지않은 노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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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참전용사 월터(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평생 포드자동차에서 일했다는 자부심이 가득한 전형적인 미국 보수층 노인입니다. 노인은 다 외롭지만, 월터는 특히 외롭습니다. 자식들은 돈만 밝히고 아내는 얼마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인종차별주의자인 그의 이웃은 다 아시아계이민자들뿐이고 종교생활도 거부합니다. 게다가 한국전에서 저지른 살상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기자신과도 화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웃집 멍족 소년 타오가 불량배들의 협박에 못이겨 ‘1972년산 그랜토리노’를 훔치려고 침입합니다. 자신이 직접 조립한 그랜토리노는 월터의 삶이자 자존심이자 자부심의 상징과도 같았는데말입니다. 화가 잔뜩 난 월터에게 타오의 가족들은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그 벌로 타오는 월터의 집안일을 도와주게됩니다. 달갑지않은 인연이지만, 타오를 자주 보게되면서 조금씩 정(情)이 생깁니다. 수줍음 많은 타오가 얼마나 착하고 성실한지, 이해할수 없었던 멍족의 문화가 얼마나 정스러운지, 타오의 누나 수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똑똑한지 알게되면서 월터는 어느새 그들의 보호자가 되버립니다. 하지만, 자신이 아무리 도와줘도 이역만리 낯선 나라로 이민온 타오와 수가 행복하게 살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것만큼이나 어렵다는 현실을 보게되면서 월터는 괴로워집니다. 그러던중, 동네불량배들에게 수가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월터의 분노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집니다. 타오와 수에게 받은 정(情)을 정의(正意)로 대답한 월터의 마지막은 외롭지 않았을겁니다.

월터는 전쟁 중 받은 훈장과 자신의 분신 그랜토리노를 타오에게 물려줍니다. 무엇보다 타오와 수에게 새로운 출발을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언제나 찡그린 얼굴가득 ‘나 불만많아, 건드리지마’라고 써붙이고 완고한 자신의 세계에 고립되었던 월터를 변화시킨 건 결국 따뜻한 정(情)이었습니다. 조금만 마음의 문을 열어도 그 사이로 그토록 놀라운 사랑의 바람이 불어올줄이야...이 영화는, 누구나 한번은 겪을수밖에 없는 ‘죽음’에 대해, 노년의 고독과 그 고독의 깊이만큼 절실하게 필요한 사랑에 대해, 죄의식과 참회에 대해, 이민자들의 혹독한 현실에 대해, 진정한 가족애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만듭니다. 나이들수록 명감독으로 성장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보면서 좋은 노인으로 나이들어가는 것은 쉽지않지만, 좋은 노인이 알려주는 인생의 지도는 경전과도 같다는걸 알게됩니다. 78세! 클린트이스트우드가 <그랜토리노>를 제작,감독,주연했을 때 나이입니다.

KBS1라디오 <함께하는 저녁길, 정은아입니다> 연출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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