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한은 사상초유 '지하금고 이송작전'

내년 하반기 별관 재건축 맞춰 미발행 화폐 십수조 강남본부로 옮겨



이르면 내년 하반기 사상 초유의 현금이송작전이 펼쳐진다. 한국은행이 별관 재건축을 앞두고 지은 지 100년이 된 지하금고 새 단장 등을 이유로 금고에 보관하고 있는 십수조원 규모의 미발행 화폐를 강남본부 등의 금고로 옮기기 때문이다. 6·25전쟁 직후인 지난 1950년 진해 해군통제부로 옮겨졌던 ‘지금은(地金銀)’을 제외하면 한은 지하금고 안의 돈이 다른 곳으로 옮겨지는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17일 한은에 따르면 이르면 내년 하반기 별관 철거를 앞두고 한은은 서울 중구 소공동 본관 지하에 있는 금고의 돈을 강남 등 인근 지역본부의 지하금고로 옮길 예정이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별관 재건축에 맞춰 지하금고에 있는 현금을 강남 등 지역본부로 옮겨야 한다”며 “당초 내년 6월에 철거할 예정이었지만 최근 모든 리스크 요인들을 점검하면서 일정들이 약간 늦어져 철거가 약간 늦어질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서울 소공동 한은 지하금고에는 십수조원 규모의 미발행 화폐가 보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발행 화폐란 화폐 발행기관인 한은이 조폐공사를 통해 새로이 찍은 뒤 시중에 풀기 이전의 신권, 그리고 유통과정 중에 한은이 회수해서 일시적으로 보관하고 있는 돈을 말한다.


한은 지하금고의 미발행 화폐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지하금고의 지금은(地金銀)과 미발행 조선 은행권을 옮기려 했지만 급박한 상황 때문에 화폐는 결국 옮기지 못했다. 지금은이란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금과 은을 말한다. 소공동 지하금고에 남겨진 이 미발행 조선 은행권이 북한군의 손에 들어가면서 그대로 시중에 풀렸고 이 때문에 정부는 1953년 정전 이후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일부 사료에는 순금 260㎏, 은 1만5,970㎏도 남겨졌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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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당시에도 지하금고 금괴이송작전은 첩보작전을 방불케 했다. 북한군이 38선을 넘어온 이틀 뒤인 6월27일 아침. 구용서 초대 한국은행 총재는 신성모 당시 국방부 장관을 찾아 한은 지하금고 자금의 이동계획을 논의했다. 당시 한은 금고에는 순금 1,070㎏과 은 2,513㎏을 담은 금괴 89상자, 미발행 조선 은행권 40억원이 보관돼 있었다.

상황이 급박한 만큼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곧바로 20여명의 무장 헌병이 대형 군 트럭을 몰고 소공동 한국은행 본관(현 화폐박물관)을 찾았다. 금괴를 실은 뒤 시든 플라타너스 나뭇가지로 위장한 트럭은 오후2시 무렵에 한은을 떠났다. 진해에 있는 해군통제부까지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만 꼬박 38시간. 이 금괴는 다시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보내져 뉴욕연방준비은행에 맡겨졌고 전쟁이 끝난 뒤 1955년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에 가입할 때 지분 출자금으로 사용됐다.

한은 관계자는 “별관 재건축 관련 인허가 절차가 끝나는 시기에 맞춰 관련 부처와 협의해서 자금이동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라며 “강남 등 수도권 인근 지역본부에 분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은은 강남본부를 비롯해 인근 지역본부에 미발행 화폐를 옮긴 뒤 지하에 흩어져 있는 금고를 하나로 통합하는 등의 개·보수 작업을 마치는 오는 2020년께 다시 돈을 옮겨올 예정이다.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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