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투자를 하십니까? 투기를 하십니까?

김현수 증권부 차장



김현수 증권부 차장

증권부 초짜 기자 시절 처음 인터뷰를 한 전문가는 당시 여의도 증권가에서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진 슈퍼개미였다. 한여름 땡볕에 그를 만난 곳은 증권사 객장도 시원한 카페도 아닌 영등포 롯데삼강(현 롯데푸드) 공장 정문 앞. 접이용 낚시 의자를 편 그는 지나가는 냉동탑차 수를 바를 정(正)자로 표시하며 세기 시작했다. 한참 수를 세더니 일어나 전화로 롯데삼강 주식을 매도했다. 그 해 롯데삼강의 주가는 경쟁업체의 신제품이 히트를 치며 하락세를 이어갔다. 인공지능(AI) 투자까지 등장한 지금 보면 참 미련한 투자방법이다. 아이스크림 냉동탑차 수를 직접 눈으로 보고 판매현황을 확인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주식을 사는 게 아니라 회사의 미래와 내 노후를 맞바꾼다”고 말하며 자신의 투자방법을 20년째 고수하고 있다. ‘가치투자’라는 거창한 표현을 쓰지 않아도 그는 이미 기업의 가치에 투자하고 있다.


구조조정 바람이 휩쓸고 있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회사채에 간 큰 개미들이 몰리며 급등세다. 특히 한진해운 신주인수권부사채(BW)는 채권단 자율협약 문제가 불거졌던 지난 달 25일부터 17일까지 88%나 올랐다. 현대상선도 마찬가지다. 2019년 9월 만기인 BW가 자율협약 이슈가 불거진 이후에 급등하며 25.1%나 올랐고 일반 회사채도 최고 34% 상승했다.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들이 회사채와 시장에 던진 회사채를 개미들이 고스란히 받아내며 가격을 올린 것이다. 급기야 금융당국은 17일 전 증권사 홈페이지에 해운사 채권 투자에 유의가 필요하다는 공지를 냈다.

관련기사



개인투자자들이 구조조정 기업의 회사채를 사들이는 이유는 저가 매수를 통해 차익을 남길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과거 STX 등의 회사채 보유자들이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원금의 일부를 회수한 사례와 동양사태 당시 일부 원금을 보존해 준 사례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동양 사태와는 다르다. 동양사태는 기업어음(CP) 발행자체에서 문제가 있었고 불완전 판매가 문제가 됐다. ‘설마 망하겠어’라는 마음으로 투기세력이 몰려 급등한 회사채는 언제든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

투자와 투기는 어쩌면 백지 한 장 차이다. 이익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하지만 분명하게 달라지는 점은 투기는 매매로 차익을 거두는데 그치지만 투자는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고 입증될 때 희열을 느낀다는 점이다. 유럽의 워렌버핏이라고 불리는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투자자를 “세상의 소란한 아귀다툼에서 멀어져 흔들의자에 앉아 여송연 연기를 내뿜으며 상상력을 동원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투기가 아닌 투자철학을 만들어보자.

/hskim@sedaily.com

김현수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