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이슈 때문에 전방위로 여신관리가 깐깐해지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대표들이 은행을 상대로 ‘갑질’ 하던 시절이 끝났다고 봐도 됩니다.”
한 시중은행 여신 담당자는 최근 은행권의 중소기업대출 동향을 이렇게 요약했다. 조선과 해운업의 구조조정 여파로 은행들이 자산 확대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방점을 찍고 있는 상황이라 은행과 중소기업 간 지위가 다시 역전됐다는 설명이다.
18일 금융계에 따르면 금융권 전체적으로 구조조정 파장이 커지는 가운데 시중은행들이 중기대출 요건을 차츰 강화하고 있다. 특히 구조조정 이슈와 연관된 조선이나 해운·건설 쪽 대출을 죄고 있는 움직임이 뚜렷하게 감지된다.
시중은행의 한 리스크 담당자는 “구조조정 관련 산업 부문의 리스크가 높아질 수 있다는 판단하에 이미 지난해부터 대출 연장 시 금리를 추가로 올려받거나 대출 한도를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내부에서도 상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은행들은 선제적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대출 가산금리를 올리는 방식으로 대출 수요 조정에 나서고 있다. 은행연합회 공시자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의 중기대출에서 1·4분기 보증서 담보대출 금리는 지난해 4·4분기 대비 0.03~0.15%포인트가량 올랐다. 기준금리가 다소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가산금리를 더 올리는 방식으로 혹시나 모를 리스크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중기대출 시장의 23%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기업은행의 경우 보증서 담보대출 가산금리를 같은 기간 0.03%포인트 높여 평균 3.74%의 금리를 받고 있다. 기업대출 부문의 비중이 큰 KEB하나은행과 우리은행 또한 같은 기간 중기 보증서 담보대출 가산금리를 각각 0.16%포인트, 0.05%포인트 올리며 수요 조절에 나서는 모습이다.
물론 수치상으로는 시중은행의 중기대출 잔액이 올 1·4분기에만 전년 말 대비 9조6,000억원가량 증가하는 등 꾸준한 상승 추세이기는 하다. 하지만 우량 기업으로의 대출 편중 현상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영업 담당 임원은 “우량 중소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지난해와 비슷하기 때문에 대출 증가액이 꾸준할 뿐 대부분 은행들은 중기대출 증가 추이를 조절하는 분위기”라며 “무엇보다 조선이나 해운 관련 업체가 모여 있는 지역의 본부장이나 지점장들을 중심으로 대출 영업에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대형 은행들이 이처럼 몸사리기에 나서는 가운데 조선·해운 관련 업체가 밀집한 영남권을 지역 기반으로 하는 저축은행들도 구조조정의 사정권에 들어섰다. 지역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산업이 위기를 겪으면서 경기가 위축돼 대출 수요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부산·경남 등 영남권에 본점을 둔 저축은행은 12곳, 영업점이나 출장소를 운영하고 있는 저축은행은 5곳이다. 저축은행 79개 가운데 약 4분의1에 해당하는 저축은행들이 구조조정의 영향권에 든 셈이다.
저축은행의 경우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조선·해운 대기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여신은 거의 없다. 하지만 구조조정의 위기감이 하청업체와 업계 종사자들에까지 퍼지면서 저축은행도 구조조정의 영향권에 들어서고 있다.
특히 조선업이 지역경제를 떠받드는 울산·거제·통영 등에 있는 저축은행의 경우 최근 들어 구조조정의 여파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울산에 영업점을 둔 저축은행의 한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 동구의 경우 아파트 시세가 하락하는 등 경기 침체가 점점 현실화되는 분위기”라며 “부동산 경기뿐 아니라 지역경제가 침체되면서 대출 신청 건수가 약 10% 하락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구체적인 수치는 안 나왔지만 연체율도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영남권 소재 또 다른 저축은행의 한 관계자는 “지역을 먹여 살리는 산업이 위기를 겪으면서 지역경제가 근래 들어 너무 안 좋다”며 “전에 비해 최근 두 달 동안 대출 건수가 25% 가까이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경기전망이 밝지 않으면서 저축은행의 대출심사도 까다로워지는 분위기다. 부동산담보인정비율(LTV)을 10%포인트가량 낮춰 적용하는 등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양철민·이두형기자 chop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