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기린은 왜 목이 긴가





기린의 목이 긴 이유를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은 ‘용불용설’로 유명한 라마르크다. 그는 1809년 발간한 저서 ‘동물철학’에서 “기린은 높은 곳에 있는 먹이를 얻기 위해 목을 계속 늘어뜨렸고 이로 인해 지금처럼 목이 길어졌다”고 설명했다. 목 길이만 사람 키만큼 긴 기린은 옛날부터 설명이 필요한 존재였다. 자주 쓰는 기관이 발달한다는 용불용설은 그럴듯했지만 멘델의 유전법칙이 발견되고 유전자의 역할이 밝혀지면서 오류로 판명났다. 라마르크가 주장한 ‘획득 형질의 유전’이 틀렸다는 것은 잭 니클라우스의 아들이 아버지처럼 골프를 잘 치지 못한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아들도 아마추어를 뛰어넘는 실력을 갖췄지만 그것은 그가 살면서 연습해 획득한 형질이지 태어날 때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기린의 목이 긴 이유는 먹이가 아니라 짝짓기에 있다. 길고 굵은 목을 가진 수컷일수록 목을 서로 부딪혀 힘을 과시하는 넥킹(necking) 싸움에서 우위를 점해 암컷의 선택을 받았다. 목이 긴 수컷의 유전자가 암컷의 선택으로 오랜 세월 후손에 전해지면서 지구에서 가장 키 큰 동물이 됐다. 성(性)선택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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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탄자니아 등 국제공동연구팀이 기린의 목을 늘린 유전자 변이를 찾았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기린과에 속하면서도 기린과 달리 목이 짧은 오카피의 유전체 서열을 기린과 비교했다. 그 결과 ‘FGFRL1’ 유전자에 생긴 변이가 기린의 긴 목을 만드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밝혀졌다.

갑자기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오카피의 FGFRL1 유전자에 같은 변이를 인위적으로 주면 오카피가 기린으로 바뀔까. FGFRL1 유전자는 사람에게도 있다. 같은 변이가 가해진다면 사람은 어떻게 될까. 얼마 전 하버드의대는 세계 각지의 과학자·기업인 등을 초청해 인간의 유전체를 합성해내는 이른바 인간 창조 프로젝트 회의를 열어 논란을 일으켰다.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한기석 논설위원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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