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법조비리와 그 대책

이시윤 전 감사원장

법관 기피제도 기능 마비 여전

묻지마식 동료 비호의식 버리고

변호사 보수 법제화 검토해야



수감된 기업인으로부터 보석·집행유예의 석방 조건으로 100억원을 받은 혐의로 부장판사 출신의 최모 변호사가 구속됐다. 사법연수원 동기나 고교 동문 등 연고관계가 있는 판사들의 사건을 집중 수임해 12건의 수임 사건 가운데 6건을 항소심에서 감형 또는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전관예우’에 앞서 ‘친분예우’라는 평을 받을 만하다. 인공지능(AI) 로봇 변호사가 조만간 등장할 혁신의 세계에서 우리 현실이 그저 부끄럽다.

‘한국법조인대관’이라는 육중한 책이 20만~30만원을 호가하지만 날개 돋친 듯 팔린다. 그 안에 판검사와 변호사의 출생일·출생지·학력·경력 등 족보가 총망라돼 있다. 사건 담당 판사와 인맥상통의 변호사를 쉽게 골라잡을 수 있어 ‘브로커 명부’라고도 한다.


디지털 시대에 들어와서는 담당 판사·검사와 변호사의 친밀도를 수치화한 이른바 ‘인맥지수’가 인터넷 유료 사이트에 올랐다가 대법원의 게재 금지 판결이 내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도 음성적으로 이용된다는 말이 있다.

연수원·고시·대학·고교·직장 동기라는 연으로 모임을 결성하고 인적 네트워크 형성의 섹티즘에서 법조계가 벗어나지 않았다면 문제다. 한국 사람이 있는 곳에 3개의 모임은 필수적이라 한다. 모임을 좋아하는 한국인에 대한 풍자다. 뭉치면 산다는 생존 전략이지만 정실의 배타적 문화의 기반일 수도 있다. 이런 것이 사회 전반에 만연한 풍토에서 법조계도 그 영향 아래 있는 것이라고 낙관만 할 수는 없다. 약골인 채식동물, 조류, 어류 등은 포식동물의 먹잇감이 되지 않으려고 끼리끼리 뭉치는 집단방위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법조인은 여러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 선발된 소수인이고 내공을 쌓은 강골이므로 반드시 뭉쳐야 살 수 있는지 살피거나 노후 대책에 광분할 필요가 없다.


일본 판사에게 들은 말이다. 사법연수소 동기라고 해 변호사가 판검사에게 밥을 사주는 일은 없다고 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더치페이로 각자 계산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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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사 18년 경력에 대법원장까지 지낸 이영섭 선생은 필자에게 사법관은 매우 외로운 직책이라는 점을 자주 강조했다. 사사로운 정으로 누구를 봐줄 수 없기 때문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 친구·일가친척이 모두 떨어져 홀로 남게 된다는 말씀이었다. 그 때문인지 주변에 사람들이 와글거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거의 저녁 약속도 없이 근무시간이 끝나면 곧장 댁으로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지연·혈연·학연·직연·종연·군연 등 여섯 가지 연을 중요시하며 친구·일가친척을 살피는 마당발이다 보면 법조계의 고질적 병폐인 ‘전관예우’나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병폐 시정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선생의 지론이었다.

외국의 예나 모범 법조인을 거울삼아 법조인끼리 뜨겁게 뭉치며 ‘우리가 남인가’의 의식구조라면 이제 마땅히 청산해야 할 때다.

최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연고사건에 대해 담당 판사가 자진해 사건 재배당을 신청하는 제도가 활성화돼 고무적이다. 그러나 법관에게 공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을 때 상대방의 신청으로 손을 떼게 하는 기피제도는 여전히 기능이 마비돼 있다. 최근 5년간 법관에 대한 기피·회피 신청을 받아준 비율이 0.08%로 전무하다시피 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적됐지만 그 뒤에도 개선하려는 노력을 볼 수 없다.

일찍이 양병호 대법원 판사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재판장에 대한 기피신청을 받아줘 군사정권 시대에 큰 고초를 겪은 일이 있었다. 그것이 우리 사법사상 전무후무의 기피 사례였다. 묻지마식의 동료 비호 의식을 버리고 이유 있는 기피신청을 과감히 받아주는 제2·제3의 양병호가 나오기를 바란다. 기피제도가 제 기능을 하면 법조 정화와 중립법관에 의한 재판 운영에 획기적인 진전이 있을 것이다. 법관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그리고 부르는 것이 값인 변호사 보수를 독일처럼 법제화하는 것을 검토할 때다.

이시윤 전 감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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