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용서하기 힘든 악인(惡人)을 가끔 봅니다. 전혀 인연이 없는 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하고도 반성은 커녕 피해자에게 미안한 마음조차 갖지않는 악인들….종교적, 정치적, 질병 등의 이유로 전세계 곳곳에서 잔혹한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보면 어제까지 우리와 함께 숨쉬고 살았을 평범한 이웃입니다. 악마가 저질렀을 것같은 사건을 접할 때마다 <데드맨워킹>(1995년작,팀 로빈스 감독)의 매튜가 떠오릅니다.
데이트중인 젊은 남녀를 성폭행하고 잔혹하게 살해한 매튜(숀 펜). 그는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에 히틀러를 추종하고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용서도 구할 줄 모르는 뻔뻔한 인간입니다. 매튜는 모든 죄를 공범에게 떠넘기며 흑인 빈민촌에서 <희망의 집>을 운영하고 있는 헬렌수녀(수잔 서랜든)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마음 착한 수녀님은 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난생 처음 교도소를 방문합니다. 교도소 담당 신부님은 “이곳에 낭만은 없다. 모두 사기꾼이고 당신을 이용하려 들거다”라며 주의를 줍니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깊은 수녀님은 매튜를 보고 먼저 웃어줍니다. 매튜는 맡겨놓은 물건 찾듯이 당당하게 수녀님에게 변호사 선임 등 이것저것을 부탁하고 심지어 남자가 그립지 않느냐며 희롱까지 합니다. 살인범이 아니라도 가까이하기 힘든 매튜에게 수녀님도 실망하지만 사형만은 면하게 해주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하지만, 매튜를 돕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족과 친구들의 불만과 걱정을 듣게되고 무엇보다 피해자 가족들의 비난에 수녀님은 당황합니다. 직접 찾아가 마주한 피해자 가족들의 삶은 처절했습니다. 끔찍하게 세상을 떠난 자식에 대한 그리움, 미안함, 후회, 무엇보다 살인범에 대한 분노….
아이를 잃은 부부의 70%가 이혼하는 현실 속에서 한 부부는 실제로 헤어지기까지합니다. 수녀님은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같이 울어주면서도 매튜를 버리지는 않습니다. 매튜의 회개야말로 매튜에게도 피해자가족에게도 중요하다는걸 알기 때문입니다. 수녀님의 진심이 통해서일까요. 사형집행 몇시간을 남겨놓고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매튜는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고 피해자 가족들에게 사과를 합니다.
이 영화는 사형제도를 다뤘지만, 저는 ‘제도’보다는 헬렌수녀님의 진심어린 행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자연스럽게 어느 한쪽에 줄을 서게 됩니다. 사형수 중에 부자는 없다는 영화속 대사처럼 태생적으로 갈라진 빈부의 줄, 남녀의 줄도 있지만 정치성향에 대한 줄, 세상에 대한 온갖 사안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줄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 경험은 그 중간 어느 지점에 머물수도있습니다.
수녀님이 매튜를 돕는다고 피해자 가족들의 아픔을 모르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처럼 수녀님은 피해자 가족들과 같이 기도하고 도움을 줄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중간에서 모두를 감싸고 인간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비난을 받게됩니다. 헬렌수녀님은 ‘죽음을 마주한 약한 인간’을 구원해주고자할 뿐입니다, 그 대상이 살인자라하더라도말이죠. 흉악범죄에 희생당한 피해자들의 고통을 어떻게 어루만져줄 수 있는지, 운좋게 살아남은 우리가 풀어나가야할 숙제임과 동시에 매튜같은 악인에 대한 고민도 우리몫입니다. 매튜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게 아니기 때문이고 그의 마지막 참회야말로 피해자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이기 때문입니다.
KBS1라디오 ‘함께하는 저녁길 정은아입니다’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