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오바마의 쌀국수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2년 10월 최연충 우루과이 대사는 한국인에게 보내는 개천절 축하 메시지를 위해 호세 무히카 대통령을 방문했다. 그가 찾아간 곳은 수도 몬테비데오 교외의 한적한 곳에 있는 조그마한 집. 세평 남짓한 공간에 짝도 맞지 않는 의자와 낡은 나무 책상이 있는 거실과 부엌·침실이 전부인 곳이었다. 잠시 후 대통령이 직접 손님을 위해 술상을 내왔는데 먹다 남은 위스키 반병과 술잔 대용으로 쓸 밥그릇이 고작이었다. 외신들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했다. 대낮부터 안주 없는 ‘강술’을 마셔야 했던 최 전 대사는 당시 만남을 자신의 저서에서 “온몸으로 형언할 수 없는 따뜻한 정을 느꼈다”고 표현했다.


모든 지도자들이 무히카 전 대통령과 같을 수는 없다. 평생을 노동자·농민들과 함께했다는 마오쩌둥조차 문화혁명 당시 술과 고기 없이 야채만 올라온 식탁을 보고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수많은 대통령과 예비 대통령들이 서민과 함께 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국민의 지지를 얻는 데 ‘대통령이 우리한테 왔다’는 얘기만큼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는 게 없기 때문일 터. 역대 대통령들이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 때마다 시장을 찾는 것이나 대선 후보 시절 허름한 식당을 찾아가 주인 할머니의 욕을 들으면서까지 굳이 국밥을 먹는 연출을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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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을 방문 중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국 유명 셰프와 현지 음식점에서 일반인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두 사람의 메뉴는 베트남의 서민음식인 쌀국수로 맥주를 포함한 총비용은 우리 돈으로 약 7,000원 정도였다. 식당 밖에는 오바마 대통령을 보기 위한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뤘음은 물론이다. 베트남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는 미국으로서는 이보다 좋은 홍보수단은 없었을 듯싶다. 정치는 다 쇼라고들 하지만 지도자라면 국민이 원하는 쇼를 못 이기는 척하고 한 번쯤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송영규 논설위원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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