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작품의 이 배역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네 번을 고사했다. 마냥 낡고 지루한 이야기일 것 같았다. 제안받은 캐릭터보다는 다른 배역에 눈이 간 것도 사실이다.
배우 이혜영(사진)이 ‘낡고 지루할 것 같다’며 거절했던 연극 ‘갈매기’로 돌아온다. 그것도 ‘하고 싶지 않다던’ 바로 그 배역으로. 그는 오는 6월 4일 개막하는 연극 ‘갈매기’에서 유명한 여배우인 아르까지나 역을 맡아 지난 2012년 ‘헤다 가블러’ 이후 4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선다.
이혜영은 26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갈매기’ 기자 간담회에 참석해 “다시 ‘갈매기’를 읽으면서 아르까지나라는 인물이 인간으로나 배우로나 상당히 완성된 인격이라고 느꼈다”며 “이 작품에 이 배역으로 참여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열심히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톤 체호프의 대표작인 ‘갈매기’는 문학의 새로운 형식을 주장하는 작가 지망생(뜨레쁠례프)과 그런 아들을 인정하지 않는 유명 여배우(아르까지나), 서로 다른 대상을 향해 사랑을 느끼는 성공한 소설가(뜨리고린)와 배우 지망생(니나)이 빚어내는 인간의 욕망과 사랑·갈등을 다룬다.
사실 다른 배역에 더 마음이 갔다. 이혜영은 “1994년 김광림 연출의 ‘집’에 출연하며 극 중 극으로 ‘갈매기’에 나오는 니나의 독백을 한 적이 있다”며 “그때 눈물까지 흘리며 니나 캐릭터에 빠졌는데 아르까지나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이혜영은 태생적으로 아르까지나에 적역’이라며 캐스팅을 고수한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의 뚝심이 그를 돌려세웠다. “제가 연극으로 데뷔해 많은 작품도 하고 상도 탔는데 저를 연극배우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요. 한 번은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김 감독님이 ‘연극배우로 제대로 해보고 싶다면 아르까지나 역을 하라’고 하더군요. 언제부터인가 ‘갈매기’와 아르까지나는 제게 숙제 같은 존재가 돼버린 것이죠(웃음).”
연출을 맡은 루마니아 출신의 펠릭스 알렉사도 이혜영에게 강한 신뢰감을 드러냈다. 그는 “배우가 캐릭터와 너무 잘 맞아 떨어져도 연출의 해석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고는 한다”며 “이혜영은 그러나 내가 그린 ‘아르까지나’라는 그림을 완벽히 소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극찬했다.
“작업 내내 행복하고 배우는 것도 많다”는 이혜영은 “갈매기를 이미 여러 번 본 관객, 그리고 (예전의 나처럼) 작품에 선입견을 품고 있는 관객 모두에게 이번 연극이 새롭게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6월4~29일 명동예술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