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이슈&워치]철강·유화·건설도 구조조정 고삐 늦춰선 안된다

원재료값 내려 수익호전됐지만

공급과잉 구조적 요인은 여전

멀리 보고 사업 큰틀 다시 짜야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이 한창인 가운데 최근 업황이 반짝 호전된 철강·석유화학·건설 업종도 구조조정의 고삐를 바짝 죄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철강과 석유화학 업종은 국제원재료 가격이 하락하면서 수익성이 개선됐지만 공급과잉과 수요부족이라는 구조적 불황 요인이 여전하다.

정부는 지난해 5대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한 업종 중 조선과 해운 구조조정을 속도감 있게 정부가 주도하되 나머지 철강·석유화학·건설은 업계 자율로 추진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전문가들 역시 시장 자율로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방향성은 옳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다만 기업들이 일시적 실적호전에 도취해 구조조정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되며 오히려 여유가 있을 때 장기적 비전을 갖고 큰 틀의 구조재편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불황 파고를 일시적으로 넘더라도 향후 구조조정을 마친 중국 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이 예고된 만큼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근본적인 경쟁력을 끌어 올릴 수 있는 ‘질적’ 구조조정에 힘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건설사들의 경우 지난해 신규 주택분양 호조로 급한 불은 껐지만 여전히 빙하기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2~3년 뒤 매출절벽이 우려되는 만큼 만성적자에 허덕이는 중소 건설사에 대한 수술 작업이 시급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27일 철강 업계에 따르면 대형 철강업체들은 자산매각, 비핵심 계열사 정리 등 자율적 구조조정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철강 업황이 호전되면서 구조조정 속도가 다소 늦어지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2815A02 TPA업계 영업이익 추이2815A02 TPA업계 영업이익 추이


●철강, 中공세 버틸 체질개선부터…유화, 고부가제품으로 확 바꿔야

포스코 올 34개 계열사 매각

현대제철은 車 강판에 집중

한화케미칼, 유니드와 M&A

TPA 생산량도 대폭 줄여

정부 “자율적 구조조정 지원”




포스코의 경우 올해 총 34개 계열사를 매각· 청산하고 부동산 등 19건의 자산을 매각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계열사 정리로 3조2,000억원, 자산매각으로 8,000억원 등 총 4조원의 재무개선 효과를 올릴 계획이다. 하지만 1·4분기까지 완료된 것은 일본 내 에너지 관련 자회사 매각 등 6건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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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제철도 마찬가지다. 채권단은 그동안 추진해온 이 회사의 매각작업을 최근 중단했다. 채권단은 최근 실적이 호전되고 있어 좀 더 나은 가격에 팔기 위해 매수자 물색을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동부제철은 지난 2014년 자율협약을 맺었다가 지난해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최근 철강 업황이 호전되면서 2015년 매출 1조6,040억원, 영업이익 760억원을 기록해 턴어라운드에 성공했고 올 1·4분기에도 매출액 3,529억원, 영업이익 325억원의 실적을 냈다. 동국제강 역시 비핵심 계열사 매각 차원에서 추진해온 국제종합기계 매각이 가격 문제로 일정보다 늦어지고 있다.

다행히 현대제철의 경우 지난해 노후화된 포항공장 철근 생산라인(연산 60만톤 규모) 및 인천공장 주단강 생산설비를 폐쇄하고 자동차강판 등 고부가 품목에 사업역량을 쏟아붓는 등 수익성 개선에 집중하고 있으며 동국제강도 비주력 사업을 축소하고 자산을 매각한 후 실적개선에 힘입어 자율협약 졸업을 앞둔 점은 다행스럽다.

철강 업계의 경우 자산매각 등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보다 더 중요한 점은 글로벌 철강업 재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조정 추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일본과 중국 철강사들이 불황기에도 인수합병(M&A)으로 몸집을 불리고 규모의 경제를 통해 원가 경쟁력을 높이는 상황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원가가 낮아지면서 철강업의 수익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글로벌 경제구조상 앞으로 큰 규모의 턴어라운드는 힘들다”며 “장기적으로 중국 철강업체들의 공세를 버텨낼 수 있는 구조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유화학도 선제적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주요 정유화학 업체들이 지난해에 이어 올 1·4분기에도 ‘깜짝 실적’을 보이며 신바람을 내고 있지만 아직 안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범용제품에서는 중국과 가격경쟁을 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한계사업은 과감히 정리하는 한편 고부가 석유화학 제품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다시 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긍정적인 점은 조선 업계와 달리 유화 업계는 자발적 구조조정이 속도감 있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화케미칼과 중견 화학기업인 유니드는 25일 상호 주력사업을 밀어주는 M&A 계약을 체결했다. 한화케미칼은 유니드에 울산 석유화학단지 내 염소·가성소다(CA) 공장을 842억원에 매각하면서 CA시장의 공급과잉 해소에 나섰다. 유니드는 이 공장을 개조해 가성칼륨을 생산할 계획이다. 한화케미칼과 유니드는 각각 국내 CA 1위, 세계 가성칼륨 1위 기업이다.

이에 앞서 삼성그룹은 지난해 롯데그룹에 삼성정밀화학과 삼성BP화학, 삼성SDI 케미컬 부문 등을 통째로 매각해 선제적 구조조정의 모범을 보이기도 했다.

심각한 공급과잉에 시달렸던 테레프탈산(TPA) 감산도 속도를 내고 있다. 파라자일렌(PX)으로 만드는 TPA는 화학섬유 제품의 중간원료로 폴리에스테르 원사나 필름 등의 제품을 가공하는 데 쓰인다.

현재 국내에서는 한화(200만톤), 삼남석유화학(150만톤), 태광(100만톤), 롯데케미칼(60만톤) 등이 TPA를 생산하는데 이들 업체는 올 들어 생산량을 10~20%씩 줄였다. 이에 따라 만성적자에 시달리던 삼남석유화학은 3월 월별 흑자를 낼 정도로 상황이 개선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불안요인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석유화학 역시 장기적으로 범용제품이나 저부가제품은 중국의 공급능력이나 원가경쟁력을 따라잡을 수 없는 만큼 경량화 플라스틱, 특수고무 등 고부가 제품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기 위한 구조개편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조선·해운 외 공급과잉 및 부실징후 업종에서 자발적이고 선제적인 구조조정의 틀을 다시 한번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맑은 때 우산을 준비하는’ 자세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과감한 M&A, 자산매각을 추진해야 하며 이를 위해 종합적인 플랜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위관계자는 “정부는 자율적 구조조정을 지원한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며 “정부 입장에서는 원샷법을 통해 정상기업이 선제적 구조조정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기본원칙인 만큼 선제적 구조조정 여부는 어디까지나 기업 의지에 달렸다”고 말했다.

/이혜진·서일범기자 hasim@sedaily.com

이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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