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노년의 고독, 그 쓸쓸함에 대하여

조영제 한국금융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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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쯤 전일까. 아들 녀석이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3명의 노인과 병실을 함께 썼다. 하루는 퇴원을 앞둔 앞 병상의 노인이 말을 걸어왔다. “젊은이, 늙으면 제일 불쌍한 사람이 누군지 아오? 마누라 일찍 죽은 사람이야. 나는 아직 며느리한테 속옷 빨아달라고 한 적이 없어. 그런 것 내놓기 시작하면 어려워지는 거야. 요즘도 친구들끼리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5,000원짜리 짜장면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 나누는데 그 돈도 없어 안 나오는 친구들이 점점 생겨….” 그 말씀을 듣고 나니 우리의 미래 모습을 본 것 같아 씁쓸했다.


요즘 베이비붐 세대의 노후 걱정이 화제다. 그들은 6·25전쟁 직후 포연이 가신 폐허에 태어나 죽기 살기로 일한 덕에 우리나라를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으로 성장시켰다. 그동안 부모 부양하기에 바빴고 자식들 키우기에 바빴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들의 노후 준비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가진 것이라고는 달랑 집 한 채뿐. 그나마 빚 얻어 쓰느라 담보가 닥지닥지 붙었다. 그런 상태에서 맞는 노년의 모습은 암담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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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연세대에서 평생을 봉직하신 노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올해 나이 97세. 여전히 정정한 체력과 또렷한 기억력, 그리고 두 시간 내내 흐트러짐 없이 열정적으로 강의하시는 모습에 감동했다.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 바야흐로 100세 시대가 도래했음을 실감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아무런 노후 대책도 없이 무엇으로 100세까지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얼마 전 장학금 전달을 위해 어느 중학교를 찾았다. 선생님께 한 반에 학생이 몇 명이냐고 물었더니 20명이라고 했다. 아찔했다. 도대체 앞으로 우리 세대를 누가 먹여 살릴 것인가. 김현철 서울대 교수는 ‘저성장 시대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라는 책에서 나름의 실증분석 자료를 근거로 올해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오는 2018년부터는 인구절벽이 급격히 온다고 했다. 어느 때건 현 세대가 벌어 전 세대를 먹여 살리는 것은 자연의 순리다. 다들 그런 기대감에 젊어 열심히 일하고 은퇴 후 안정된 삶을 누리려 한다. 그러나 다음 세대인 청소년이 줄면서 그런 기대는 무너지고 있다. 국가의 생존 기반이 흔들리고 민족의 씨가 말라가는 것이다.

노후의 편안한 생활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돈이 필요하다. 아무런 노후대책 없이 노년을 맞은 경우 초조할 수밖에 없다. 자식에게 의존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난달 25일 내집연금 3종 세트가 출시됐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제부터 부모나 자녀 모두 주택에 대한 인식을 상속 대상에서 노후 연금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내집연금 3종 세트는 가계부채를 줄이고 노후생활의 안정을 기한다는 점에서 일거양득의 장점을 지닌 정책이다. 그간 벽돌 쌓듯 차근차근 금융개혁을 추진해온 임 위원장의 뚝심이 또 하나의 업적을 남긴 셈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노후 걱정에 그나마 한 줄기 희망의 빛을 줬기 때문이다. 조영제 한국금융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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