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칼럼] 문제는 구조조정 실천이야

권구찬 증권부장

좀비기업 솎아내기 2년 허송 세월

총선 피해 집권 후반기 몰아치다니

구조조정 골든타임 지연 책임 엄중





발등에 불이 떨어져도 단단히 떨어졌다. 조선과 해운 등 부실업종 구조조정 몰아치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구조조정은 4월 총선 이후 모든 경제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돼버렸다. 서비스업 활성화와 규제 혁파, 수출부진 타개 같은 당면한 정책 과제는 구조조정 회오리에 함몰돼 명함조차 꺼내지 못할 처지다. 성장 절벽 앞에 젖 먹던 힘까지 내도 모자랄 판에 간판 수출기업의 생사가 간당간당 걸렸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들의 처지가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2013년 자율협약에 돌입해 군살 빼기가 느슨했던 STX조선은 3년간 6조원을 지원받고도 법정관리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성동조선과 SPP조선 역시 벼랑 끝 신세다. 대주주 산업은행이 조 단위의 공적 자금을 쏟아 부은 대우조선해양은 18조원 빚 폭탄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국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은 대우와 STX 부실로 덴 가슴에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마저 미덥지 못한 눈치다. 양대 국책 선사인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용선료 인하 협상 결과에 운명이 달렸다.

마땅히 퇴출돼야 할 좀비 기업이 빚으로 연명하고 그로 인한 국민경제 손실은 시장실패의 결과물에 다름 아니다. 중국의 호황에 힘입어 몇 년 치 일감을 쌓아둔 조선업, 역시 중국발 물동량 증가에 쾌재를 부르던 해운업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영환경 변화에 둔감한 게 화근이다. 조선과 해운의 불황 사이클이 이토록 길지 미처 예견하지 못한 경영 실패가 결정타였고 채권단은 부실을 방조했다. ‘인천에 배가 들어오기만 하면 한방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해운업의 속성과 수주산업 조선의 자만도 부실을 키웠다. 국책은행의 뒷배를 믿고 ‘설마 어떻게 되겠나’는 모럴해저드가 대마불사를 잉태했다.


예나 지금이나 기업 구조조정에 관한 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작동하지 않았다. 기업은 뼈를 깎는 노력을 회피하거나 외면했다. 기업의 기초체력을 평가하는 회계법인과 신용평가기관은 경고음을 울리기보다는 일감을 놓칠까 전전긍긍했다. 기업과 채권단은 임계점에 도달할 때까지 빚 폭탄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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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의 시장자율 원칙은 당연하지만 공허하고 한가한 소리다. 과거를 돌아보면 기업 구조조정은 오롯이 정부의 몫이었다. 멀리는 1980년대 산업합리화 정책이 그랬고 2003년 카드대란 역시 정부가 도맡았다. 외환위기 때 재벌개혁의 주역은 정부였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지만 구조조정만큼은 시장기능이 미성숙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현실적으로 총대를 멜 곳은 정부뿐이다.

기업 구조조정이 실패했다고 평가하기는 이르다. 그럼에도 실기의 책임은 남는다. 정책당국자들은 정치권 탓으로 항변하겠지만 그것이 실기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시간을 2년 전쯤으로 되돌려 보자. 구원 등판한 최경환 경제팀은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며 경제 활력 증진에 방점을 찍고 구조조정을 뒷전으로 밀어버렸다. 뒤늦게 4대 구조개혁에 시동을 걸었지만 기업 부문은 예외였다. 지난해 말 4조원의 대우해양조선 지원 안을 통과시키더니 유동성 위기에 몰린 STX는 시한부로 생명을 연장해줬다. 현대상선은 대기업 신용위험평가에서 워크아웃 직행인 B등급이 아닌 조건부 B등급을 받아 골든타임을 허비했다. 구조조정은 총선 승리로 가는 꽃 가마에 걸림돌 같은 존재였을 터.

정부는 6월 말께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을 내놓는다. 계획을 아무리 잘 짠 들 구조조정 이슈에 빨려 들어가면 백약이 무효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얼마 전 올해 경제성장률을 3.0%에서 2.6%로 낮추면서 “구조조정 지연 때는 추가로 더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좀비 기업의 문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뒤늦게 밀린 과제 몰아치기 하는 꼴이 우스꽝스럽다. 구조조정 지연이 시장의 실패인 동시에 정부의 실패인 연유가 여기에 있다. /권구찬 증권부장 chans@sed.co.kr

권구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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