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신발에 대한 경배

김경윤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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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신발들이 누워 있는 신발장이 나의 제단이다.


탁발승처럼 세상의 곳곳으로 길을 찾아다니느라

창이 닳고 코가 터진 신발이 나의 부처다.

세상의 낮고 누추한 바닥을 오체투지로 걸어온

저 신발들의 행적을 생각하며 나는

촛불도 향도 없는 신발의 제단 앞에서

아침저녁으로 신발에게 경배한다.

그 제단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합장하는

나는 신발의 行者,

신발이 끌고 다닌 그 수많은 길과


그 길 위에 새겼을 신발의 자취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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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평생 읽어야 할 경전이다.

나를 가르친 저 낡은 신발들이 바로

갈라진 어머니의 발바닥이고

주름진 아버지의 손바닥이다.

이 세상에 와서 한평생을

누군가의 바닥으로 살아온 신발들,

그 거룩한 생애를 생각하며 나는

아침저녁으로 신발에게 경배한다.

머리 위에 신이 있고, 발밑에 신이 있다. 하나는 이끌고, 하나는 받쳐준다. 신과 신 사이 사람이 간다. 신발은 자서전이다. 걷고 뛰고 차고 미끄러지며 새긴 흔적이 그 사람의 생애요, 이력이요, 알리바이요, 업경이요, 블랙박스다. 또각또각 뚜벅뚜벅, 하루도 신과 신의 보살핌 받지 않은 날 없다. 살금살금 비칠비칠, 하루도 신과 신 사이를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세로쓰기다. 신 괄호 열고, 사람 넣고, 신 괄호 닫고. 들키려 해도 들키고, 들키지 않으려 해도 들키는 당신, 오늘은 신을 이고 신을 딛고 경쾌한 춤을 출까요?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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