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7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다시 한번 ‘경제 살리기’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통큰 예산’을 배정했다. 내년엔 창업 지원자금 1조 8,000억원에 문화 재정 관련 예산 6조 6,000억원을 쓰겠다는 것이다. 문화와 창업을 위해 사용할 8조 4,00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은 규모 면에서 과거 어느 정부에서도 없었던 과감하고 실험적인 시도로 평가받을 만하다.
그렇다면 이들 공공 예산이 스타트업들의 연구개발에 미치는 효과는 과연 어떨까?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평가가 엇갈린다. 긍정적인 관점으로는 국가 주도 R&D 지원 사업이나 창업 지원 사업의 효과가 대단히 클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여기에는 기술 관련 연구 개발이 ‘일출 효과’(spill-over), 즉 하나의 지식으로서 주변에 전파되고 흘러넘치는 효과가 있어서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이를 시도할 이유도 여력도 없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따라서 만약 국가가 개별 기업을 대신해서 특정 사업을 통해 스타트업으로 하여금 충분히 자금을 지원해 준다면, R&D에 대한 기업들의 고질적 저투자 현상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다.
창조경제정책과 같은 국가 주도형 사업의 ‘무용론’ 주장 또한 만만치 않다. 이런 입장을 가진 경제학자들은 대개의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들이 나랏돈을 ‘눈먼 돈’으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헛되이 나랏돈만 쓰고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결국 박 대통령이 제시한 8조 4,000억원이라는 막대한 국고가 도덕적 해이에 빠진 기업들의 배만 불리고 창조경제의 진정한 혁신과 발전에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 결과로 귀결될 것이란 얘기다.
두 가지 상반된 관점 중 어느 쪽이 옳은지는 판가름하기 쉽지않다. 다만 국가 주도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 좀처럼 훌륭한 스타트업 탄생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원인에 대해서는 논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효과적인 자원 분배를 위한 시스템의 부재가 큰 문제다. 실제로 정부 당국이 각 요소 기술별로, 산업별로 몇 백억 단위 창업 생태계 예산을 기획하고 집행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이런 ‘빈틈’을 노려 기회주의적으로 자금을 획득하려는 세력이 꽤 많다. 특히 ‘엑셀러레이터’, 즉 창업 지원 기업 허가를 받아 국가로부터 자금을 수주하고, 다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영향력 있는 사업자들 중엔 어처구니없는 ‘갑질’을 일삼는 경우가 있다. 나랏돈을 스타트업 기업에 건네주는 중간자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40~50%에 달하는 지분을 요구하는가 하면 경영진 교체 등의 무리한 압박을 가하는 식이다. 채 걸음마도 떼지 못한 창업기업들을 두 번 죽이는 악행이다. 정상적인 자금 수혈이 어려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엑셀러레이터를 찾는 초기 스타트업에게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실상이 이렇다면 엑셀러레이터는 ‘엔젤투자자’라고 말할 수 없다. 이름만 ‘엔젤’일 뿐 천사의 가면을 쓰고 상대방의 절박함을 악용해 제 배 채우기에만 급급한 악마일 뿐이다.
중소기업들 중에도 ‘문제아’는 많다. 정책 당국은 창업 정책의 허점을 노리는 중소기업들의 기회주의적 행동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자생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는 뒷전으로 한 채 정부를 해바라기 삼아 연명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한 쓰레기 재처리 기술 개발 기업의 경우 지난 정부 때는 ‘녹색성장’ 관련 사업에 초점을 맞춰 나랏돈을 빼내더니 이번 정부에선 ‘창조경제’로 간판을 바꿔 예산을 따내려 하고 있다. 어디나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는 있기 마련이라지만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진정한 창조는 생태계에 활기가 돌게 하는 것이다. 생명력 말이다. 이를 위해선 건강한 생태계 관리가 급선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지성으로 꼽히는 이어령은 ‘생명이 자본이다’라고 했다. 필자는 이 말에 적극 공감한다. 모처럼 야심 차게 내놓은 정부의 창업 지원 정책이 성공을 거두려면 관련 예산이 꼭 필요한 분야에 제대로 쓰이도록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그래야 산업 생태계에 생명력이 왕성해 질 수 있고, 그 생명력을 발판으로 참다운 창조경제도 발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