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선거에 보호주의 바람이 불면서 미국 정부가 한국에 대한 통상 압력 수위를 높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물론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도 대외통상 분야에 대해 강력한 보호주의 성격을 띤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으면서 주변국에 대한 공세 고삐를 조이고 나선 것이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는 1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세계경제연구원(이사장 사공일) 주최 조찬강연에서 노골적인 통상 압력에 나섰다. 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관세·비관세 장벽을 제거했지만 여전히 한국은 실제 필요보다는 사업하기가 어려운 환경”이라며 “법률 서비스 시장 개방 등 한미 FTA의 완전한 이행을 위해 남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구원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강연에는 이례적으로 송인창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자유무역협정교섭관, 천준호 외교부 양자경제외교국장 등 국제·통상 관련 정부 핵심 관료들이 대거 참석했다.
리퍼트 대사는 양자 협정인 한미 FTA뿐 아니라 다자간 협정인 ‘메가 FTA’와 관련해서도 수위 높은 발언을 이어갔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비준을 앞둔 미국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추진하는 중국과 메가 FTA 주도권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그는 “역내 새로운 (경제) 규칙 확립을 위해 미국과 협력해야 한다”며 “중국과 (다자간 통상 협력)을 하면 한미 FTA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중국이 아닌 미국과 손을 잡으라는 주문이다.
이를 놓고 미국이 우리 정부가 추가 가입을 희망하는 TPP의 통행료를 높이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미 FTA 협정에서 개방을 약속했지만 여전히 문을 걸어 잠근 법률과 의약 서비스 분야를 지렛대 삼아 협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2일 한국을 방문하는 제이컵 루 미국 재무부 장관은 리퍼트 대사의 바통을 이어받을 확률이 높아 보인다. 루 장관은 지난달 한국을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하는 환율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한 장본인이다. 지난 4월에는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나 한국 환율정책의 투명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처럼 급박하게 전개되는 미국의 통상 및 환율에 대한 압박은 미국의 대선 정국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클린턴 후보는 한국 등 대미 무역 흑자국의 환율시장 개입에 대해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후보는 한미 FTA를 전면 재검토하는 한편 불공정 무역행위에 대해서도 제재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강인수 현대경제연구원장은 “자유무역에 협조적이던 클린턴 후보도 트럼프 후보 때문에 태도를 바꿨다”며 “통상 선거 직전에는 무역수지 적자가 커지고 일자리를 뺏긴다는 논리가 일반 유권자들에게 와 닿는 만큼 미국 내 정치적 지형을 이해하고 경제외교를 통해 대미 무역흑자와 환율 구조를 잘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상훈기자 세종=구경우기자 ksh25t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