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스타트업도 열정페이? 고용의 질 '뒷걸음질'

'제2 벤처 붐' 창업 늘었지만

안정성 낮은 일자리 양산

허술한 계약서로 일방적 해고

인센티브·스톡옵션 제공 등

구두 계약하고 말 바꾸기도

"창업때 자금 지원 뿐 아니라

조직 관리·노사 관계 교육 필요"





크라우드소싱 플랫폼인 A기업은 지난 4월 말 직원의 25%를 갑작스럽게 해고했다. 전·현직 직원들이 기업 정보를 올리는 비즈니스 모델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이용자 수도 늘었지만 뚜렷한 수익 모델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퇴사자 중에는 입사한 지 반년이 채 안된 사원급 직원도 포함됐다.


최근 들어 정부가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창업을 독려하고는 있지만 스타트업의 고용 안정성이 떨어지고 있어서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초기 자본이 부족한 스타트업은 지원 기관에서 인건비를 지원받아 인턴이나 계약직 등의 형태로 직원 고용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인 수익이 발생하지 않으면 생존을 위해 직원을 해고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일부 스타트업은 수익모델이 자리 잡은 후에도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하는 등 ‘갑질’을 하기도 한다. 규모가 꽤 큰 스타트업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던 김상미(26·가명)씨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했으나 얼마 전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받았다. 김 씨는 “회사가 새로운 사업을 하고 있어 열심히 일을 배우기 시작했으나 2주 정도 지났을 때 갑자기 새로운 디자이너를 뽑았다며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하더라”며 “근로계약서에 인턴인지 정규직인지의 여부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고 (해고 사유 등에 대한) 독소조항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겠지만 어이없고 황당하다”고 호소했다. 김 씨는 기본적으로 스타트업 업계의 근로계약서 작성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고용노동부에 신고했다가 동종 분야 스타트업계에서 일을 구하기 어려울 수 있어 다들 말을 안 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일부에서 행해지고 있는 구두 계약 관행도 문제다. 중견기업에 맞춰 연봉을 책정하기 부담스러운 스타트업들은 앞으로 인센티브나 스톡옵션을 제공하겠다는 근로 조건을 제시하곤 한다. 하지만 “나중에 회사가 잘 되면 더 주겠다”며 구도로 한 약속은 법적 효력이 없다. 반드시 서면으로 확약 받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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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소개로 한 스타트업에 취직한 이현창(34·가명) 씨는 구두로 계약했다가 낭패를 본 케이스다. 이 씨의 연봉은 1,500만원. 해당 스타트업의 대표는 “지금은 연봉을 1,500만원 밖에 못 주지만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면 회사 규모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나중에 늘어난 회사의 가치만큼 챙겨주겠다”고 말했다. 한 부동산 앱 관련 스타트업 역시 직원을 채용한 후 2년 뒤 스톡옵션 제공을 약속했지만 그 기한이 채워지기 전에 일방적으로 내보냈다. 팀장급 직원들이 나서서 이런 식의 일방적인 해고 관행은 회사 이미지에 좋지 않다며 만류했지만 대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당장 비용 절감이 시급한 대표는 “난 기업가가 아니라 장사꾼”이라며 해고를 밀어붙였다.

한 스타트업의 인사 담당자는 “사업을 하겠다고 서비스를 개발하고는 있지만 회사 설립시 법인 등록을 아예 하지 않은 곳이 많다”며 “인맥으로 직원을 채용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 사업 초기에 법인으로 등록하면 세금 등 비용 부담이 커진다는 이유로 꺼린다”고 귀띔했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국정 과제로 내세우며 ‘제2의 벤처 붐’이 조성되고는 있지만 늘어난 스타트업 수만큼 양질의 고용은 이뤄지지 않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나 일부 스타트업에서 회사를 키우며 고생한 직원들과 상생하겠다는 인식 대신 싼 값에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내다 버리는 태도 역시 바뀌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청년들은 스타트업 성장성을 기대하면서도 고용 안정성에 깊은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바일 리서치 기업 오픈서베이와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에서 진행한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 2015’에 따르면 청년들이 스타트업 취업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로 ‘낮은 고용안정성에 대한 불안’이 1위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스타트업으로 양질의 고용을 늘리려면 노사 관계 교육과 기업가 정신 인식 확산이 절실하다고 조언한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영이 어려워 직원을 해고하는 일은 어쩔 수 없지만 수익이 나는 경우에는 직원의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최저임금 이상의 월급을 지급하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스타트업을 비롯해 소규모사업자, 신생업체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행위가 위법 수준에 해당한다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으므로 창업 자금 지원 뿐만 아니라 조직이나 인사관리, 노사 관계에 관한 교육 컨설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주연·정수현기자 nice89@sedaily.com

백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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