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혈맹 자본주의와 품위 있는 금수저의 조건

[FORTUNE'S EXPERT] 신제구의 '리더십 레슨'

최근 우리 사회에 ‘금수저’ 논란이 한창이다. 부를 일군 기업가가 자녀와 후손에게 물려줄 가장 큰 유산은 재산이아 니라 겸손함과 실력, 그리고 강인한 기업가 정신이다.최근 우리 사회에 ‘금수저’ 논란이 한창이다. 부를 일군 기업가가 자녀와 후손에게 물려줄 가장 큰 유산은 재산이아 니라 겸손함과 실력, 그리고 강인한 기업가 정신이다.


뜬금없는 ‘수저’ 논란이 한창이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냐 흙수저냐가 결정되고 이에 따라 인생도 결정된다고 믿는 분위기다. 우리 사회에 확산된 불평등 정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그런데 금수저에 대한 시각이 그리 곱지 않다. 혈육이란 이유만으로 별다른 수고 없이 부와 권력을 물려받은 금수저는 더 이상 부러움이 아니라 적대감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더욱이 최근 일부 기업이 자행한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행위는 금수저에 대한 분노를 한층 가중시켰다. 최고경영자가 위기에 몰린 기업의 고급정보를 이용하여 사적 이득만 취하고 기업과 직원들을 방치한 사건, 돈벌이를 위해 문제점이 명백하게 밝혀진 제품의 위험을 고의적으로 숨겨 순박한 소비자와 그 가족을 억울한 죽음으로 몰아간 기업, 약자인 직원에 대한 비겁한 갑질 등 금수저에 대한 부정적 적대감은 이미 인내심의 한계를 넘었다. 이러한 일부 금수저들의 반사회적 탐욕과 염치없는 행위는 혈육만의 승자독식이 빚어낸 일종의 ‘혈맹(血盟) 자본주의’의 폐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자기들만의 세상에 자기들만 존재하고자 한다.


물론 위대한 선조의 뒤를 이어 사회에 공헌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등 존경받아 마땅한 경영자와 그 후손들도 많다. 따라서 혈맹 자본주의 자체를 문제삼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경영자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과 가치를 고려해볼 때 그들의 행위는 집안을 초월해야 한다. 경영자와 그의 자손들이 품위 있는 경영자로 존경을 받는 것이 사회와 국가에 중대한 이슈라는 관점에서 품위 없는 금수저의 특징과 품위 있는 금수저의 조건에 대하여 몇 가지 생각해봤다.

먼저 품위 없는 금수저는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첫째, 세대를 거치면서 기업가 정신이 급속히 퇴색한다는 점이다. 과정은 없고 결과만 취하는 상속이라면 산전수전을 겪었던 창업주의 기업가 정신이 상속과정에서 생략되거나 퇴색될 가능성이 크다. 상속에는 성공의 자부심과 더불어 창업자의 피와 땀, 그리고 불타는 투혼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정신적 자산이 생략되고 경제적 풍요와 성공의 자부심만 상속된 상황이라면 위기가 닥쳤을 때 위기대응 밑천이 없기 때문에 판단력이 가장 먼저 흔들리게 되고 불완전한 상속자는 혼란에 빠지고 만다. 혼란에 빠지면 원칙은 사라지고 꼼수에 집착하게 되며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이쯤 되면 이미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둘째, 철없는 자만과 배타적 자기방어만 키운다. 혈맹 자본주의의 가장 위험한 약점은 자신에 대한 지나친 자만과 독선이다. 자신을 지나치게 특별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나 이해는 학습된 적이 없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공포감 없는 지배욕구(Fearless Dominance)’라고 한다. 타인의 감정과 욕구에 대한 공포감 없이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마음껏 분출하는 것에 대해 어떠한 죄책감도 없이 타인을 지배하는 습관이다. 죄책감이 없으면 쉽게 죄를 짓기 마련이다. 타인의 고통은 자신만 모른다. 이 같은 공포감 없는 지배욕구에는 별다른 약이 없다. 평범한 사람과는 사고의 바탕이 다르기 때문이다. 선천적이라기보다는 오래 전부터 반복적으로 학습된 이기적인 지배욕구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바뀌기 힘들다. 완벽한 패배를 겪지 않는다면 말이다. 물론 기업의 시스템이 철없는 금수저의 실수를 어느 정도 방어해줄 수는 있겠지만 철없는 금수저가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되어 그 시스템마저 바꾸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셋째, 고통 결핍의 나약한 리더십 함정에 빠지기 쉽다. 고통은 때때로 교훈을 준다. 힘겨운 삶의 경험들은 삶에 대한 진지한 가치와 내성을 키워줌으로써 사람을 성숙시킨다. 그런데 이러한 고통을 좀처럼 겪을 기회가 없는 금수저가 세상에 혼자 던져져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면 고통이 결핍된 만큼의 고통을 언젠가는 겪어야 한다. 그것도 혼자서 말이다. 조직에서 자격 없는 리더가 승진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 조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피터의 원칙’이라고 한다. 혈맹 자본주의 또한 피터의 원칙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혈육이란 이유를 제외하고는 자격이 검증되지 못한 금수저라면 주변에 기회주의자들만 가득할 공산이 크다. 그래서 혈맹 자본주의는 실패 사례가 더 많다. 또한 어설픈 금수저는 자기가 잘못해놓고도 자신의 잘못은 회피하고 부하직원만 희생시키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자신의 못난 부분이 드러나는 것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공짜로 권력을 물려준 분을 만족시키기 위해 어설픈 전문성을 발휘해야 하다 보니 그 과정이 순탄할 리 없다. 뭔가 잘못되면 모든 것을 타인의 잘못으로 돌리면 그만이다.


그렇다면 혈맹 자본주의의 함정을 극복하고 자손들을 품위 있는 금수저로 키우기 위해서는 어떤 유산(Legacy)을 남겨주어야 할까? 바로 앞에서 언급했던 혈맹 자본주의의 약점을 보완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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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누구보다 강인한 기업가 정신을 인식하고 학습하며 실천하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기업에 위기가 닥치면 누구보다 먼저 목숨을 걸고 앞장서고 평화가 찾아오면 직원들의 성공과 행복을 우선하는 존경 받는 기업가 정신을 강력히 심어주어야 한다. 존경은 존경 받을 만한 행위에서 비롯되고 존경 받을 만한 행위는 존경 받을 만한 정신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좋은 가문에는 좋은 가훈이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둘째,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겸손을 심어주어야 한다. 금수저는 절대 공공의 적이 되지 않도록 사회적 도덕성과 직원에 대한 사랑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품위 없는 금수저에 대한 사회적 배려는 사라졌다. 예전에는 봐주던 사람을 이제는 사회가 봐주지 않기 때문에 돈과 권력에 대한 불필요한 의존은 오히려 독이 된다. 아울러 내부의 적을 키우는 일 또한 자살행위와 같다. 금수저는 가만히 있어도 충분히 두려운 존재다. 이러한 존재가 주인행세를 하면 구성원들은 침묵의 추종도 하겠지만 주인의 약점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만약 금수저의 갑질을 견디다 못한 직원들의 분노 공감대가 형성되어 겉으로 분출되기 시작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파국을 겪어야 한다. 경찰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여론이다. 순식간에 바보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겸손해야 한다. 겸손은 때때로 치러야 할 위기도 비껴가게 해준다.

셋째, 칼날 같은 실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리더는 균형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 상황에 대한 감각과 민첩한 대응이 필요하다. 그게 진짜 실력이다. 세상은 변한다. 세상을 읽는 눈과 직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세련된 예의를 직원들에게 보여야 한다. 어설픈 깜짝쇼로 자신의 뛰어남을 과시하려 든다면 기업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변화란 이름으로 아무런 설득도 설명도 없는 거친 의사결정에 집착한다면 직원들의 희생만 초래할 것이고 직원들의 희생은 또 다른 위기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칼날 같은 실력은 혼자서 키우기 힘들다. 전문 분야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겠지만 특히 리더십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지금까지 품위 없는 금수저의 특징과 품위 있는 금수저의 조건에 대해 살펴봤다. 창업은 쉬워도 수성이 어렵단 말도 있다. ‘가문의 영광’은 품위 있는 금수저에 의해 지켜질 수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신제구 교수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겸 국민대학교 리더십과 코칭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국내 주요 기업 등에서 리더십, 팀워크, 조직관리 등에 대해 강연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대한리더십학회 상임이사, 한국리더십학회 이사 등을 맡고 있으며, 크레듀 HR연구소장, KB국민은행 연수원 HRD컨설팅 팀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신제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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