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9일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가 끝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 총재가 기준금리 인하의 타이밍을 잡은 것은 지난주 말 발표된 미국의 지난 5월 고용지표를 확인하고 나서였다. ‘고용 쇼크’ 수준의 지표는 미국 금리 인상의 연기를 의미했고 이는 곧 한은에 금리 인하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봤다. 금융통화위원들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금통위를 앞두고 올라오는 수출을 비롯한 경기지표는 어둡기만 했다. 금리 인하의 최대 걸림돌로 여겼던 해외 자금유출이 미국의 금리 인상 지연으로 안정될 것으로 예상되자 금리 인하 대열에 서는 위원들이 속속 늘었다.
한은이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부양의 발걸음을 떼는 것은 1년 만이다. 이 총재는 금통위 기자간담회에서 “4~5월을 놓고 보면 1·4분기보다 내수가 나아졌지만 5월 내수지표 회복세는 4월에 비해 약화된 것으로 나타났다”며 최근 경기를 진단했다.
실제로 정부의 부양책으로 잠깐 살아나는가 싶던 내수지표는 최근 다시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3월 전월 대비 4.3% 증가했던 소매판매액은 4월 들어 다시 0.5% 감소세로 돌아섰다. 광공업 생산도 1.3% 줄어 3월에 이어 두 달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내수부진을 덮어줄 수출도 여전히 마이너스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4월부터 이 총재가 조금씩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총재는 4월 금통위 당시 “상황에 따라 통화정책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 데 이어 5월에는 “충분히 완화적이라고 금리를 못 내리는 것은 아니다”라며 통화완화를 시사해왔다.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사라진 것이 힘을 보탰다. 불과 지난주까지만 하더라도 연준이 이르면 6월께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기대감이 팽배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한은의 금리 인하가 맞물리면 내외금리 차가 좁아지면서 외국인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 있다. 한은이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던 이유다.
이 총재도 “재닛 옐런 미 연준 의장이 연설을 통해 미국 고용지표의 부진이 일시적일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지난 수년간 노동시장이 크게 개선돼왔다는 것 등의 평가를 종합해보면 금리 인상 시기가 그렇게 멀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 외에 유럽중앙은행(ECB)이나 일본은행(BOJ)이 완화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금리를 내리더라도 급속한 자본유출을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쉽게 말해 미국의 금리 인상 시기가 미뤄진 지금이 금리 인하의 최적 타이밍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부양책이 효과를 보게 될 경우 물가도 내년쯤 정상궤도에 오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정부 계획이나 (한은의) 희망대로 내수가 점진적으로 회복된다면 시기를 못 박을 수는 없지만 내년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물가안정 목표치에 접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은의 중기 물가 목표치는 2.0%로 이달까지 목표를 밑돌 경우 다음달 이 총재는 사상 첫 물가설명 책임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다만 이 총재는 통화정책과 재정, 그리고 구조개혁이 함께 가는 이른바 ‘삼박자론’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여러 정황을 감안할 때 한은이 이달에 먼저 내리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면서도 “통화정책만으로는 안정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없고 재정정책과 구조개혁이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은 일관된 입장”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총재는 정부의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 방안에 포함된 한은의 수출입은행 출자 가능성에 대해 “금융위기 시 금융안정 책무를 천명하기 위해 들어간 문구”라면서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출자를 할 경우에도 정부가 인수하는 그런 조건으로 하겠다”며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