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종목·투자전략

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 "국내증권사 수익성 바닥...위험감수, 새먹거리 도전 나서라"

[서경이 만난 사람]

'좀비증권사'에 당국이 먹거리 주는 행태 벗어야 자본시장 발전

대형사 해외진출 필수...자기자본거래·구조화금융 과감히 추진

새로운 사업·장기 책임경영하려면 잦은 CEO 교체 지양해야

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이호재기자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이호재기자


“국내 자본시장에서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좀비 증권사’가 너무 늘어났습니다. 외국계를 포함해 56개사가 경쟁하고 있는데 수익성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증권사가 죽을 시점이 되면 금융당국이나 시장에서 새 먹을거리(상품)를 던져주고 증시도 때마침 잠시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형태가 반복되면 한국 자본시장은 발전할 수 없습니다.”

안동현(52·사진) 자본시장연구원장은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내 금융투자 업계의 새로운 먹거리 발굴과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수차례 강조했다. 그는 “금융당국이 증권사 대형화를 유도해 새로운 사업에 도전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기존 투자은행(IB) 부문이나 헤지펀드 전담중개(프라임 브로커리지) 사업도 제대로 추진되고 있지 않다”면서 “여태까지 한 것처럼 늘어난 자기자본을 고작 채권 자산에 묻어두고 금리 하락의 영향으로 수익을 기대하는 구조로는 망하는 길밖에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경영대학, 서울대 경제학부 강단에 오른 후 영국계 IB인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에서 퀀트전략본부장으로 직접 시장에 참여하며 거시경제와 실물경제를 모두 경험한 안 원장에게 국내 자본시장의 역할과 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해 물어봤다.

/대담=김현수 증권부 차장 hskim@sed.co.kr

-미래에셋대우·KB현대증권(가칭) 등 초대형 증권사의 수익모델은.

△현재 시장 상황은 살 것은 없는데 가판만 크게 차려놓은 모양새다. 증권사를 대형화한 것은 중소형사와 다른 새로운 사업을 시도해보라는 취지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대형증권사조차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지(리스크테이킹) 않는다. 결국 지금까지와는 다른 일을 해야 한다. 해외 진출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자기자본거래(프랍트레이딩)나 일부 외국계 IB가 포기한 구조화금융 분야를 과감하게 치고 나가야 한다. 이런 도전 없이 기존 대형증권사가 적정 수준(10%대)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을 올릴 방법은 없다.

-새로운 영역으로 나서려면 누군가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하지 않나.

△새로운 먹거리 발굴을 위해서는 증권사 최고경영자(CEO)가 장기적으로 책임경영을 할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한다. CEO가 기껏 사업을 만들어뒀는데 2~3년 뒤에 바뀌어버리면 뒷사람이 감당하는 구조다. 이런 환경에서 CEO는 단기 실적을 끌어올려 더 조건이 좋은 계열사나 금융투자회사로 옮기려고만 한다. 증권사들이 단기적으로 잘 팔리는 금융투자 상품만 파는 것도 이런 이유다.

-국내 증시가 7년째 ‘박스권’에 갇혀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뭔가.

△국내 자본시장에서는 ‘고위험(하이리스크)·고수익(하이리턴)’이라는 투자공식이 통하지 않는다. 신흥국 시장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투자자들은 주가가 조금 오르면 팔고 떨어지면 산다. 투자가 아니라 ‘매매(트레이딩)’를 한다면 주가의 상승 동력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특히 기초자산의 일정한 변동에 따라 이익을 얻는 주가연계증권(ELS)이 많이 팔린 것이 박스권을 굳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획기적인 성장 동력이 나타나지 않으면 벽을 뚫기 어렵다.


-사모펀드를 투자 대안으로 생각하는 투자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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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사모펀드를 전문투자형 사모펀드(한국형 헤지펀드)와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로 나눠 규제한다. 그렇다면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회장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를 사모펀드라고 부르지 헤지펀드, PEF, 전략적투자자(SI) 등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사모펀드는 투자 고수들의 영역이다. 금융당국이 사전에 규제할 필요가 없다. 다만 일반투자자의 접근성을 높여주는 것은 굉장히 예민한 문제다. 헤지펀드에 돈을 넣으면 2~3년 정도 유동성이 묶이고 PEF도 통상 5년 이상 유지된다. 돈을 뺄 수도 없는데 어디에 투자하는지도 모르는 상품에 일반투자자가 돈을 넣는 것은 위험하다. 굳이 문을 연다면 재간접펀드를 통한 방식에 그쳐야 한다.

-정부 주도의 취약업종 구조조정에 자본시장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PEF가 기업을 사고팔아야 하지만 여건이 안 된다.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MBK파트너스도 대우조선해양을 통째로 사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이 정도의 거래를 하려면 많은 기관투자가로부터 돈을 받아야 하는데 자금을 대줄 곳이 마땅치 않다. 그럼 산업자본이 역할을 해야 하는데 대기업들이 살아남기 바쁜 상황에서 구조조정 매물을 소화할 수 있겠나. 조선업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해외 PEF는 구조조정 매물에 아예 관심이 없다. 국내 자본시장은 큰 규모의 인수합병(M&A)을 할 시장 자체를 갖추지 못했다.

-한국은행이 10조원, 정부가 1조원 대출을 통해 구조조정 재원을 확보하기로 했다. 바람직한 방향인가.

△정부가 직접 재정을 투입하는 게 가장 좋다. 다만 한국의 재정상황이 선진국과 비교하면 양호한 편이지만 빠르게 악화하는 추세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쉽게 재정을 투입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하면 인플레이션(물가상승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물가상승률이 정체돼 있기 때문에 한 번 가능한 카드라고 판단한다.

-기준금리가 더 내려갔다. 미국이 하반기에 금리를 인상하면 자본유출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데.

△ 아직은 미국(0.25%~0.5%)과 한국(1.25%)의 금리 차이가 있어 자본유출이 급격하게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유럽 자본이 주로 투자한 단기물 채권시장에서는 돈이 빠져나갈 수도 있다. 다만 국내 시장에 들어온 해외 자본의 채권투자 내역을 보면 중장기물에는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국부펀드가 주로 들어왔다. 단기적으로 돈을 뺄 기관투자가는 아니다. 미국이 올 하반기에 금리를 한두 번 인상할 것으로 가정해 0.75~1%까지 오른다고 해도 한국에 심각하게 나쁜 상황은 아니다.

-한은의 금리 인하가 국내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금리 인하는 조심스럽게 할 필요가 있다. 디플레이션(물가하락 현상)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대책이 나와야 하지만 금리 인하가 해법인지는 의문이다. 금리를 인하하면서 가계부채가 늘어난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그래서 금융당국이 안심전환대출 제도도 시행하는 등 가계부채 문제를 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부동산 가격은 꾸준히 올랐다. 부동산 가격이 올라도 사람들은 소비하지 않는다. 대출로 빚이 늘어났는데 돈을 쉽게 쓸 사람들은 많지 않다. 금리 인하가 내수 소비 진작에는 큰 도움이 안 된다.

-그렇다면 내수 소비 진작을 위해 뭘 할 수 있는가.

△가장 확실한 것은 역시 재정정책이다. 국가 간 ‘치킨게임’으로 경기 침체는 오래갈 것이다. 재정정책을 위해 돈을 확보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세금 인상, 국채 발행, 한은 발권력 동원이다. 여기서 국채 발행과 한은 발권력 동원은 미래 세대에 부담을 지우는 방식이다. 늘어나는 세금은 현세대가 내는 것이다.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세금 인상이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특히 법인세 인상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 기업에 주는 세제·공제혜택을 손볼 때가 됐다. 법인세를 낮춰도 낙수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기업이 투자에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낙수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신 기업들이 핵심 사업을 잘 추진할 수 있도록 투자 관련 규제를 풀어야 한다. /정리=지민구기자 mingu@sedaily.com

지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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