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해외칼럼]라틴아메리카서 부상하는 우파

모하메드 엘에리언 전 핌코CEO·알리안츠 수석경제자문

경기침체에 反기득권 정서 확산

아르헨 등 우파세력 속속 집권

저성장 극복하지 못한다면

반짝 돌풍으로 끝날수도



라틴아메리카 정치가 우향우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브라질·칠레 등 이 지역 주요국에서 보수세력이 속속 집권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대중이 보수 정책을 지지한다기보다 빈혈 증세를 보이는 경제와 공공 서비스에 대한 실망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라틴아메리카의 변화는 서방에서 들끓고 있는 반(反)기득권 정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는 라틴아메리카의 새 집권세력이 시민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이 지역 정치 지형의 변화는 일시적 현상에 그칠 수도 있다.


라틴아메리카 정치 지형의 지각변동을 보여주는 사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지난 수년간 정부 재정을 파탄 내면서 대중영합주의 정책을 펴온 집권층의 임기가 만료되자 아르헨티나 국민은 기업인 출신의 보수파 마우리시오 마크리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브라질에서는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탄핵 심판대에 오르면서 좌편향 일색이던 정책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좌파가 정권을 잡은 국가마저 경제 정책은 우향우하고 있다. 지난 2014년 재선에 성공한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은 시장 친화적 정책을 내놓고 있고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도 민간 기업의 영업 허용 범위를 넓히는 자유주의 정책을 들고 나왔다. 실패한 국가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는 좌파 지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최악의 정치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위기의 진원지는 전임자인 우고 차베스 정권의 대중영합주의 정책에서 비롯됐다. 공급 부족과 시장 기능 마비라는 이중고에 직면한 마두로 정부는 의회에 대한 통제를 사실상 상실했고 반대파는 헌법적 수단(국민소환)까지 동원해 대통령 끌어내리기를 시도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정치 지형의 변화를 야기한 주요인은 크게 원유·구리와 같은 국제 원자재가격의 급락과 중국의 성장 둔화다. 이 두 가지 악재는 역내 국가들의 수출을 감소시켜 경제 파탄을 초래했다. 여기에 글로벌 금융 시장 불안으로 인한 신흥국 자본 유출, 미 대통령 선거에서 표출된 반국제주의의 확산도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지역을 강타한 경기 침체는 질 낮은 공공 서비스와 빈부 격차 확대, 권력 비리에 불만을 품고 있던 대중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상대적으로 빈부 격차와 권력 비리가 적어 라틴아메리카의 선진국으로 불리던 칠레도 이런 현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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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정당은 이런 대중의 분노에서 반사이익을 얻은 집단이다. 대중은 경제 정책의 변혁과 부패 척결로 정부가 고성장을 추구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새로 집권한 우파 정권이 현재의 저성장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표심은 하루아침에 바뀔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라틴아메리카의 변화는 기득권층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전 지구적 현상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분노의 대상은 정치적 집권세력뿐 아니라 글로벌 금융기관과 다국적기업 등 민간 부문의 기득권층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반기득권 정서가 단적으로 표출된 곳은 미국이다. 공화당의 사실상의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의 부상과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보여준 예상외의 선전이 바로 그것이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기득권 타파를 내세운 정당이 전국 또는 지방 선거를 통해 정치적 기반을 다지고 있으며 심지어 영국 보수당 내에서조차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Brexit) 지지세력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심지어 필리핀에서도 반기득권 후보로 간주되는 로드리고 두테르테가 당선됐다.

대중의 분노를 야기한 원인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것인지, 반체제 움직임의 부상을 방치할 것인지 엘리트 집단은 선택해야 한다. 후자를 택할 경우 정치 혼란이 심화하면서 경제 회생을 위한 시의적절한 정책을 집행할 가능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전 핌코CEO·알리안츠 수석경제자문

김능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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