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롯데 비자금 수사] 광윤사...L투자사...'베일의 롯데' 지배구조가 비자금 온상으로

'오너일가 비리' 어떻게 가능했나

롯데 계열 86곳 중 상장사 8곳 그쳐 '감시 사각지대'

순환출자 고리도 67개...돈 최종 목적지 파악 힘들어

호텔롯데 상장해도 투명경영 정착에는 사실상 미흡

'뉴롯데' 가려면 오너 사재출연 등 지분정리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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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비리를 수사 중인 검찰이 신동빈 회장의 개인 비밀금고를 압수한 장소로 전해진 서울 종로구 가회동 롯데그룹 영빈관 전경.      /연합뉴스롯데그룹 비리를 수사 중인 검찰이 신동빈 회장의 개인 비밀금고를 압수한 장소로 전해진 서울 종로구 가회동 롯데그룹 영빈관 전경. /연합뉴스


검찰의 롯데그룹 수사가 계열사 간 부당한 부(富)의 이전을 통한 오너 일가의 비자금 조성으로 초점이 맞춰지는 가운데 재계에서는 롯데 특유의 불투명한 지배구조가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 롯데 계열사 86곳 중 상장사가 8곳에 불과할 정도로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경영 전반에서 오너의 전횡이 심해질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견제 없는 사익 편취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베일의 롯데’라는 별칭이 끝내 그룹 전체를 미증유의 위기로 몰아넣은 셈이다.

실제로 검찰은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의 딸인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과 셋째 부인 서미경씨 등이 롯데시네마 매점 사업권을 확보해 운영하면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정황과 △신격호 총괄회장이 보유 부동산을 계열사에 비싸게 팔아넘겼다는 혐의 등을 집중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내부거래가 낱낱이 공개되는 상장사에서는 쉽게 벌어지기 어려운 일들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롯데정보통신(총수 일가 지분 24.7%) 같은 회사는 전체 매출에서 내부거래 비중이 80%에 육박해 대기업 중 1위 수준”이라며 “계열사 간 순환출자고리가 너무나 복잡해 설령 부당거래가 있어도 돈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일본 롯데 지배구조 개선 노력 ‘한계’=베일 뒤에 가려져 있던 롯데의 지배구조는 지난해 7월 ‘왕자의 난’이 벌어진 후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서 일부 실체가 드러났다. 일본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인 광윤사나 일본 롯데의 중간지주회사 격인 롯데전략투자(LSI), ‘L1~12투자회사’ 등의 존재가 이 과정에서 알려졌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한국 롯데에서 일본 롯데로 흘러간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등 핵심 사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내용이 전혀 없다. 일본 롯데를 지배하고 있는 신격호 총괄회장 등 오너 일가가 받은 보수나 배당도 마찬가지로 철저히 장막 뒤에 감춰져 있다. 롯데에 대한 ‘일본 기업’ 논란도 이 같은 불투명한 지배구조에서 비롯됐다.

물론 롯데그룹 차원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해 경영권 분쟁 이후 “호텔롯데를 상장해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서는 롯데그룹의 이 같은 노력이 결과적으로 투명경영 정착에는 미흡한 수준이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대표적인 증거가 일본 L투자회사의 구주매출(대주주 보유지분 처분) 결정 과정에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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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가 제출한 증권신고서를 보면 호텔롯데는 상장 과정에서 L2·L4·L5·L6투자회사가 보유한 호텔롯데 지분 1,365만5,000주를 구주매출할 계획이었다. 이들 회사의 공통점은 신동빈 회장이 장악한 롯데홀딩스의 100% 자회사라는 점이다. 상장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롯데홀딩스는 최대 1조6,000억원에 이르는 자금을 단숨에 확보하게 된다. 신동빈 회장은 이 자금을 이달 말 롯데홀딩스 주총에서 주주들을 설득하는 ‘실탄’으로 사용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홀딩스 주주인 종업원지주회에 1인당 25억원씩 나눠주겠다는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SDJ코퍼레이션 회장)의 파격 제안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반면 LSI의 100% 자회사인 L1 및 L7~12투자회사는 구주매출 대상에서 모두 제외됐다. LSI에 대한 롯데홀딩스 지분은 31%에 불과해 상대적으로 지배고리가 헐겁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 광윤사 등을 앞세워 LSI 지분 상당량을 갖고 있어 L투자회사에 대한 정리가 이뤄지지 않으면 한일 롯데 간 투명한 지배구조를 만들기가 어렵다”며 “더군다나 호텔롯데 상장이 사실상 어려워져 신동빈 회장이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 롯데 지배구조는 더 복잡=일본에서 한국으로 이어지는 롯데그룹 지배구조 고리가 투명해진다고 해도 한국 롯데 지배구조 정리까지는 앞길이 더욱 험난하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 롯데의 순환출자고리는 총 67개로 국내 대기업집단 전체 순환출자고리 94개 중 71.3%에 달한다. 2년 전만 해도 순환출자고리가 9만5,000개에 달해 “반도체 회로도보다 복잡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신규 순환출자 등이 금지되면서 그 수가 줄었다.

롯데는 설립 이후 공모채 발행조차 꺼릴 정도로 무차입 경영을 표방하면서 계열사 간 출자가 일반화됐고 이 과정에서 얽히고설켜 복잡한 지배구조가 만들어졌다. 재계의 다른 관계자는 “롯데가 과거의 잘못을 털어내고 ‘뉴 롯데’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오너의 사재 출연 등을 통한 계열사 지분정리가 불가피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서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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