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인사이드 스토리]"이런 식에 살아남을 곳 있나"…과잉수사에 기업들 '포비아'

저인망식 롯데 수사에 재계 충격

회사부터 총수·임원 자택·개인금고까지 모조리 수색

"과거 사례들과 비교해도 강도 너무 세다"…기업들 우려

확증 전 피의 사실 과도한 공표에 자제 필요성 주문도



롯데건설과 롯데케미칼·롯데칠성음료·롯데제과 등 롯데그룹의 주요 계열사 10곳에 14일 검찰 수사관들이 또다시 들이닥쳤다. 롯데그룹 비리를 정조준하고 있는 검찰이 2차 압수수색을 시행한 것이다. 지난 10일 롯데그룹 본사 내 신동빈 회장 집무실과 평창동 자택을 비롯해 호텔롯데·롯데쇼핑·롯데홈쇼핑 등 6곳을 압수수색한 지 나흘 만이다.

재계는 검찰의 ‘저인망식’의 광범위하면서도 빠른 움직임에 충격을 받고 있다. 1차에 이은 2차 압수수색이 이뤄지면서 오너 일가를 포함해 롯데그룹의 주요 계열사를 모조리 수사대상에 올린 탓이다. 롯데는 1,000억원대 내부거래와 탈세, 횡령과 배임 의혹도 계속 흘러나온다. 리조트를 포함해 대형 사업은 빠짐없이 특혜의혹에 시달리고 있다.


기업들 사이에서는 이 잡듯 뒤지는 수사 방식에 부담감을 넘어서 두려움을 느끼는 모습까지 엿보인다. 일종의 ‘포비아’ 수준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수사가 이번처럼 이뤄지는 것이 초유의 일인데다 이런 식의 수사가 이뤄지면 살아 남을 곳이 없다는 자조 섞인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실제 일부 그룹은 정부의 롯데그룹 수사에 대한 배경과 파장을 내부적으로 따져보고 있다. 정권 말, 정부의 대기업 기조가 강경노선으로 가는 것처럼 비치기 때문이다.

경제단체의 한 임원은 “검찰이 대대적으로 수사에 나선 것을 보면 롯데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면서도 “하지만 과거 사례와 비교할 때 수사의 범위가 너무 넓고 강도가 센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검찰이 정확한 단서를 잡았거나 수사 의지가 매우 강한 것, 둘 중의 하나”라며 “다만 이런 식으로 계열사들은 물론이고 총수와 측근, 심지어 임원들의 자택까지 모조리 뒤지면 문제가 안 될 만한 기업이 있겠느냐”고 우려했다. ‘뭐라도 하나 잡겠다’는 식의 과잉수사 가능성을 염려하는 것이다.


검찰이 10일 확보한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문서만 해도 1톤 트럭 2대 분량이다. 양평동 롯데홈쇼핑과 신 회장의 평창동 집에서 가져온 것까지 합치면 압수물은 1톤 트럭 7~8대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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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그룹의 한 임원은 “내부거래와 각종 특혜 의혹을 포함해 배임과 횡령 문제는 검찰이 분명히 수사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요란하게 수사하다 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다른 의도가 있는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검찰이 이렇게 일을 벌였는데 그냥 넘어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검찰발로 ‘범죄 내역(?)’이 너무 샅샅이 나오다 보니 기업들이 모두 이런 식의 범법 행위를 저지르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4대그룹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수많은 기업 수사가 있었지만 총수의 비밀 금고나 부동산 투자를 통한 비자금 형성 등의 상황이 이렇게 대외에 노출된 것은 처음”이라며 “기업의 신인도 문제를 고려해서라도 범법 행위라는 확증이 나오기 전에는 피의 사실을 공표하는 것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한편으로 일부 기업들은 정권 말 외풍이 어느 기업에 또다시 닥칠지 모른다며 사전 준비를 하는 모습도 엿보인다. 재계의 한 대관 담당 임원은 “그룹의 극비 문서 등에 대한 보안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있다”고 전했다.

수사의 강도가 워낙 거세다 보니 일부 기업들 사이에서는 ‘웃는 모습’을 대외에 나타내지 않으려는 모습마저 엿보인다. 한 그룹 관계자는 “검찰의 수사 칼날이 워낙 여러 곳으로 확산되고 있어 기업들 사이에서는 ‘밤새 안녕’이라는 인사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라며 “검찰뿐만 아니라 다른 그룹들 눈치도 있어 경사스러운 일이라도 외부에 가급적 알리지 않으려 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업계에서는 롯데그룹은 물론 기업 전반으로 퍼지고 있는 현재의 수사 국면이 최대한 조기에 마무리되기를 바라고 있다. 검찰이 롯데의 불법을 가려내 기소할 것은 기소하는 게 맞지만 지금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롯데그룹의 지배구조가 불투명한 것이 사실이고 국부유출과 내부거래, 비자금 조성 의혹이 계속돼왔던 게 사실”이라며 “철저히 수사할 것은 수사하되 수사는 최대한 조용하면서도 빠르게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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