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의 대형 컨테이너선이 글로벌 해운사들과 공동 운항하는 항로에서 줄지어 교체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새 해운동맹 추가 가입시한이 점차 다가오는 가운데 해외 선사들이 아직 가입을 확정하지 못한 현대상선을 압박하는 것이다. 새 해운동맹에 들어가지 못하면 현대상선의 경영정상화 작업은 자칫 물거품이 될 수 있다.
16일 해양전문조사기관 알파라이너의 최신 자료를 보면 이달 들어서만도 벌써 1만3,000TEU(1TEU는 6m 컨테이너 1개)급 현대상선 선박 4척이 이 회사가 속한 G6 해운동맹 공동항로에서 교체됐거나 교체될 예정이다. 현대 프라이드호(1만3,154TEU)는 이번 주 유럽~아시아 항로에서 교체됐다. 이어 투게더호(1만3,092TEU)와 호프·빅토리호(1만3,154TEU) 역시 조만간 홍콩 OOCL 등 G6 내 다른 선사의 선박으로 바뀐다.
현대상선 측은 “교체된 선박들은 기존 항로에서 G6가 운영하는 지중해 항로로 전배된 것일 뿐”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하지만 알파라이너는 이를 “현대상선의 구조조정 작업을 우려한 해외 선사들의 선제적(pre-emptive) 조치”라고 분석했다. 현대상선의 경영정상화가 어려워질 경우 해운동맹 전체에 피해가 미칠 것에 대비해 동맹선사들이 현대상선과 거리두기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G6 선사 대부분이 한진해운과 해외 선사 5곳(하파그로이드·NYK·MOL·양밍·K라인)이 결성한 새로운 해운동맹인 ‘디(THE)얼라이언스’ 소속”이라며 “현대상선이 THE에 가입하지 못하는 상황을 가정한 행보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현대상선은 채권단에서 내건 조건 3개 가운데 2개를 완수했다. 해외 선주들과의 협상을 통해 약 20% 정도의 비율로 용선료를 삭감했고 사채권자들과 합의해 8,000억원이 넘는 채무에 대해 만기를 연장하거나 현대상선 주식으로 바꿔주기로 했다. 하지만 남은 과제인 THE 가입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채권단과 금융당국의 염려를 키우는 상태다. 현재 글로벌 해운업계는 4개 거대 해운동맹(2M·O3·CKYHE·G6)을 3개(2M·오션·THE)로 재편하는 과정에 있다. 여기에 포함되지 못하면 전 세계 주요 항만에 대한 영업망을 잃어 원양선사로서 살아남기 어려워진다.
현대상선은 이달 28일까지 THE 가입을 확정해야 한다. 현대상선과 채권단은 이날까지 모든 요건을 갖춘다는 가정 아래 다음달 18일 채권단의 출자전환 금액을 포함하는 2조5,252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일정을 공시했다. THE는 공식적으로 오는 9월까지 추가 회원사를 받기로 했다.
문제는 현대상선의 THE 가입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한진해운이다. 해운업계는 한진해운을 제외한 THE 소속 선사들이 현대상선에 호의적이라고 보고 있다. 한진해운은 “모든 회원사가 현대상선의 신규 가입에 동의하면 한진해운도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밝혔지만 아직 최종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진해운이 이처럼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해운업계와 현대상선은 물론 정부와 채권단마저 THE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진해운의 대답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