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개헌을 둘러싼 각양각색의 주장이 ‘백가쟁명’ 식으로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국민과 국회의원, 재계에서는 대체로 대통령 중임제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개헌의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정치인들의 속내를 한 꺼풀 벗겨 들여다보면 이원집정부제나 의원내각제를 원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국회 다수당이 행정부까지 책임지는 의원내각제나 권력분점이 가능한 이원집정부제를 통해 의회권력을 한층 강화함으로써 ‘개헌의 과실’을 독차지하려는 정치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대통령 중임제’ 선호도 높아…재계 “의회권력 강화되면 포퓰리즘 판칠 것”=연합뉴스가 19일 여야 국회의원 3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개헌 찬성론자(250명) 가운데 46.8%(117명)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원집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를 선택한 의원은 61명(24.4%), 의원내각제가 적합하다고 답한 의원은 35명(14.0%)이었다.
이와 함께 리얼미터가 지난 16일 CBS의 의뢰를 받아 진행한 ‘권력구조 개편 방안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1.0%가 4년 중임제를 바람직한 권력구조로 지목했다. 분권형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꼽은 비율은 각각 19.8%, 12.8%였다.
아울러 재계 관계자와 경제 전문가들 역시 서울경제신문 취재 결과 중임제에 대한 선호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전문가는 가뜩이나 비대한 국회 권력이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등을 통해 강화되면 지속적인 정국의 불안정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대자동차 사외이사인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정치문화의 풍토상 내각제로 바뀌면 포퓰리즘이 판칠 것”이라며 “여소야대 국면으로 바뀌자마자 ‘기업 두들겨 패기’ 식 입법이 쏟아지고 있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민주주의의 물질적 토대는 안정적인 경제”라며 “어마어마한 권력을 갖고 있음에도 거시경제를 아우르는 전문성이나 책임감이 결여된 의회 실정을 감안하면 대통령 책임제를 유지하되 중임제로 바꾸는 게 옳다”고 강조했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도 “19대 국회를 되돌아보면 대통령과 행정부가 뭘 좀 해보려고 해도 의회에서 전부 발목이 잡혔지 않느냐”며 “국회의 권한 남용을 통제하면서 경제 정책의 연속성을 동시에 담보하려면 대통령 중임제로 개헌을 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역시 “권력을 분산하는 이원집정부제의 경우 지역에 따른 정치적 분열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며 “한국 경제가 이만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가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존재했기 때문임을 감안하면 의회권력 강화보다는 대통령 중임제 쪽으로 논의의 방향을 틀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치인 속내는 내각제 등 원하는 경우 많아=이처럼 경제 전문가와 일반 국민은 물론 현역 국회의원 조사에서도 중임제 선호 비율이 높게 나타났지만 정작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들여다보면 의회권력 강화를 위한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우선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장기적으로 내각제가 좋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으며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 역시 내각제 또는 이원집정부제 등으로 권력구조를 바꿔 협치의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권에서는 김종인 대표나 박지원 원내대표의 경우 현행 제도하에서 대권을 거머쥐기는 사실상 힘들기 때문에 내각제·이원집정부제 등을 통해 권력의 중심으로 부상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밖에 여권의 친박계와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 내정자 등은 권력분점이 가능한 이원집정부제를 바람직한 개헌의 형태라고 보고 여론의 불을 지피는 중이다.
/나윤석·전경석기자 nagij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