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뭣이 중헌지도 모르면서….”
영화 ‘곡성’에 나오는 대사다. 1년 6개월여 남은 청와대나 정부가 중장기적인 전략 부재와 무능, 편 가르기를 드러낸 게 하루 이틀이 아니다. 저성장 고착화와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불안, 성장 잠재력 부재 등으로 민생은 헉헉대고 급변하는 동북아 지형에서 2010년 이후 꼬여만 가는 남북관계도 불안하다. 저출산·고령화 대책이나 한반도·만주·연해주 등 동북아 경제공동체 추진도 볼 수 없다. 정보통신기술(ICT)과 과학기술로 주력산업의 파괴적 혁신과 각종 신산업 육성 등 ‘4차 산업혁명’을 통한 경제·사회구조 업그레이드라는 시대정신을 부여잡고 고민하는 치열함도 없다. 오히려 비생산적인 강남 부동산 폭탄 돌리기의 만연, 조선·해운·철강·석유화학 등의 더딘 구조조정, 영남권 신공항을 둘러싼 지역갈등 등 난맥상이 도드라진다.
19대 국회 속을 썩인 정치권이 최근 대통령 단임제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 폐해 등 각 분야의 개혁을 위한 개헌논의에 착수한 것 정도가 눈에 띄나 자칫 정쟁으로 흐르지 않을까 걱정도 든다.
이제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Back to the Basics).
우선 전통산업 수술과정에서 드러난 총체적 문제점이다. 대우조선은 단기간에 수조원의 분식회계와 횡령 등으로 곪아 터졌는데도 KDB산업은행이나 회계법인은 물론 청와대와 경제부처·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등 누구도 경고음을 울리지 않았다. 오히려 폭탄을 떠안은 채 하이에나처럼 낙하산 내려 꽂기를 그치지 않았다. 물론 오너가 있는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도 수렁에 빠지기는 했지만 청와대와 정부가 큰 그림 없이 미봉책으로 일관하고 조선 3사 노조는 파업불사를 외치니 답답하다. 물론 원활한 구조조정을 위해 노사정이 사회 안전망 구축에 노력해야 할 때다. 오원철 전 박정희 대통령 경제수석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벌써 나섰어야지. 계획 세우는 사람도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며 “50년 경제계획 등을 갖고 국회를 설득해봤는지 물어보고 싶다”고 질타했다.
4차 산업혁명만 해도 그렇다. 로봇과 자율주행차·드론 등 인공지능,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클라우드, 모바일, 3D·4D프린터, 바이오, 가상현실(VR) 등을 주도할 시스템이 돼 있느냐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4차 산업혁명으로 5년간 7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으나 4차 혁명을 외면하면 초연결 사회에서 생존이 불가능하다. 증기기관을 통한 운송수단·공장 혁신이라는 1차 혁명과 전기를 활용한 대량생산인 2차 혁명에 편승하지 못해 식민지의 치욕을 겪었지만 인터넷 정보화 3차 혁명에 당당히 참여했다고 자위해서는 안 된다. 4차 혁명에서 삐끗한다면 미국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스페이스엑스), 애플, 아마존, 우버, 에어비앤비 등과 중국 화웨이,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러스왕, 디디추싱, 샤오미, 오포, 비보, BGI 등에 명함도 못 내밀 것이다. 더 이상 카카오톡을 벤치마킹한 텐센트 위챗과 싸이월드를 참고한 페이스북이 글로벌 시장을 주름잡게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창조경제’라는 캐치프레이즈만으로 교육혁명이나 금융혁신·규제완화 없이 4차 혁명에 성공할 수 있을까. 문제풀이식 수학·과학 교육과 사교육에 내몰리는 입시 위주 교육으로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울 수 없는데 공상과학(SF) 영화를 현실로 만들어갈 교육혁명을 외치는 사람이 없다. 최근 관료들의 어처구니없는 미세먼지 대책이나 이명박 정부에서 ICT 투자는 줄이면서 4대강 개발에 30조원이나 쏟아 부은 것도 이런 교육의 산물이다.
남북관계도 돌고 돌아 너무나 많은 기회비용을 치르고 있다. 독일이 통일 후유증을 겪었지만 유럽의 리더로 우뚝 선 것을 보면 장점은 무수히 많다. 4차 혁명이야 각국이 경쟁적으로 나서나 통일은 우리가 퀀텀점프할 유일한 찬스다. 대북 인도적 지원까지 차단해 북한 체제의 급변사태를 유도하는 게 과연 우리 국익에 부합하느냐는 것이다. 서해어장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개성공단을 남포·신의주·원산 등으로 확대해 북한 체제 변화를 밑바닥에서부터 끌어내고 부산에서 영국 런던까지 철도를 연결해 사람과 물자가 자유롭게 왕래하는 식으로 통일 기반을 마련하는 게 유익할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북한 정권이 갑자기 붕괴하면 북한 군부가 도발하거나 무정부 상태가 돼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이 개입하며 혼란이 커질 것이다.
“야! 이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어!” 감동적이라 여러 번 읽은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에 나오는 대목이다. 호랑애벌레가 목숨을 걸고 구름 위에 가려진 애벌레탑을 올라보니 밖에서 볼 때와 달리 실상 ‘헛일’이라며 자조하는 순간이다. 이제는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바벨탑을 쌓으려 하지 말고 누에고치에서 환골탈태해 나비로 재탄생한 노랑애벌레처럼 구태를 벗을 때다. /kbgo@sedaily.com
고광본 정보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