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기존 종합금융투자사업자를 넘어서는 초대형 증권사 육성 방안을 마련 중인 가운데 최소 자기자본 기준을 결정하는 것을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 금융당국은 대형 증권사가 인수합병(M&A)과 유상증자를 통해 내심 ‘제2의 미래에셋대우’ 탄생을 유도한다지만 금융투자업계는 정책 예측 가능성과 일관성이 떨어진다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20일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대형 투자은행(IB)과 경쟁하려면 국내 증권사가 맷집(자본)부터 키워둬야 한다”면서 “초대형 증권사에 새로운 사업 혜택을 주기 위한 합리적인 자기자본 확충 기준을 의견수렴 등을 거쳐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본시장의 판을 뒤흔들기 위해서는 현재 3조원인 종합금융투자업 기준을 상향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금융위는 지난 2013년 ‘한국형 골드만삭스’를 키운다는 목표로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IB 업무를 할 수 있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를 도입했다. 제도 도입 이후에도 대형 증권사를 통한 기업금융 시장이 예상보다 활성화되지 않자 금융당국은 초대형 증권사 자격을 갖추기 위한 자기자본 기준과 관련해 5조원 안팎을 내심 고려하고 있다. 오는 10월 미래에셋대우(옛 대우증권)와 미래에셋증권이 합병하면 자기자본 5조9,000억원 규모(자사주 제외)의 증권사가 탄생한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KB투자증권과 현대증권의 통합 증권사도 자기자본 규모가 3조9,000억원에 이른다.
다만 금융투자업계의 반발에 금융당국은 고민에 빠졌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를 도입한 지 3년 만에 또 다른 제도를 만들면서 새로운 자기자본 기준을 두려는 것에 대해 일부 증권사들은 “정책을 예측하기가 어렵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실제 신한금융투자와 메리츠종금증권 등은 자기자본 3조원 기준을 맞추기 위해 유상증자 또는 M&A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또 금융당국은 초대형 증권사 자격을 5조원으로 맞추면 통합 미래에셋대우만 적용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특혜 시비’가 일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일단 금융위는 증권사들이 M&A나 유상증자를 통해 자기자본 규모를 키우면 시장에서 더 활발히 돈을 쓸 수 있도록 건전성 규제를 은행 수준으로 풀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증권사에 적용되는 대표적 건전성 지표인 영업용순자본비율(NCR) 대신에 국제결제은행(BIS) 산하 바젤은행감독위원회의 기준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NCR는 증권사가 보유한 위험자산 대비 유동화할 수 있는 현금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지는 것이어서 활발한 투자를 제한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 반해 BIS 기준은 자산별로 위험 수준을 따져 계산하는 것이어서 상대적으로 증권사의 자본 활용 폭이 넓어진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BIS 기준은 금융사가 당장 망하지 않을 만큼만 유동성을 확보해두면 되는 수준이어서 NCR보다는 대형 증권사에 유리한 건전성 규제 방안으로 평가 받는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지난 2011년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를 처음 발표할 때도 증권사에 BIS 기준을 도입하려 했으나 국회 논의 과정에서 빠진 바 있다.
아울러 금융위는 초대형 증권사의 활발한 해외 사업 진출을 유도하기 위해 외환 업무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도 살펴보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증권사는 서울 외환시장에서 투자자금 외의 송금·환전 업무를 하려면 반드시 은행을 거치게 돼 있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거래비용 등이 부담되는 구조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외환 당국도 외환 업무 규제 완화를 과거보다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만큼 변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용어설명
◇종합금융투자사업자=자기자본 3조원 이상인 대형 증권사로 기업 신용공여(대출)와 전문투자형 사모펀드(헤지펀드)의 전담중개(프라임 브로커리지) 업무를 할 수 있다. NH투자증권·미래에셋대우·삼성증권·한국투자증권·현대증권·미래에셋증권 등 6개사가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