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시각] 2008년 대우조선을 팔았더라면

이혜진 산업부 차장

이혜진 산업부 차장이혜진 산업부 차장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요즘 대우조선해양의 난맥상을 보면 지난 2008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산업은행은 그해 초 본격적으로 대우조선해양 매각 작업에 들어갔다. 포스코-GS, 한화, 현대중공업의 3파전에서 6조3,000억원을 써낸 한화가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곧 리먼 사태라는 돌발 변수가 발생했다. 당장 현금이 부족한데다 글로벌 경제 기류 변화를 감지한 한화는 분할납부 등의 계약 조건 재협상을 요구했고 결국 산은이 이를 거절하면서 2009년 초 매각은 최종 무산됐다.

만약 산은이 분납 조건을 받아들이거나 값을 깎아줬더라면, 그래서 한화가 대우조선을 그해에 인수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사태가 일어났을까. 조선업 불황을 피할 수는 없어도 임직원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이 지경이거나 쏟아부어야 하는 공적자금의 규모가 이 정도는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이 총체적 난맥의 원인은 조선 업황이 급등락한 지난 15년간 대우조선이 주인 없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사장들은 기업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복무했고 정치권과 산은은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내기 바빴다. 2010년 이후 무리한 해양 플랜트 수주는 빅3 조선사에 공통된 것이지만 ‘주인이 있는’ 회사인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의 상황은 엄연히 다르다. 지난 2년간 대우조선해양의 부실 규모는 7조5,000억원이었지만 현대중공업그룹과 삼성중공업은 각각 5조원과 1조5,000억원이었다. 두 회사는 일찌감치 손실을 고백하고 몸집을 줄이기 시작했으며 공적자금을 받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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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회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필요한 만큼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피치 못할 일이다. 다만 회사가 정상화하면 가급적 빨리 민간에 소유와 경영을 넘겨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순환이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 시장은 뻔히 보이는 이 순환의 구조가 얼토당토않게 막히고는 한다. 아니 비틀어진 순환 구조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세력’들에 의해 순환의 흐름은 더욱 꼬이고 비정상적인 패턴을 만들어내고는 한다.

매각을 미룰수록 정권과 금융기관은 먹이사슬처럼 챙길 수 있는 자리가 많아진다. ‘회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산업은행 수장의 위상은 더욱 올라간다. 담당 관료들도 헐값 매각 시비를 피할 수 있으니 ‘폭탄 돌리기’를 마다할 리 없다. 매각이 지연될수록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국민으로서는 빨리 팔면 세금을 회수할 수 있으니 나쁠 것이 없지만 정작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국민의 이익을 대변해주는 곳이 없다. 국회는 일이 다 망가지고 나서야 청문회니 국정조사니 호들갑을 떨며 호통이나 치려고 든다.

민영화에 15년을 끌어온 우리은행은 물론이고 산업은행이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는 120여개 회사가 모두 이런 결과물에서 나온 ‘기형화한 공룡’들이다.

이 왜곡된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이제 막 산은이 대주주가 된 현대상선 역시 훗날 제2의 대우조선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 hasim@sedaily.com

강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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