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정조가 반한 그림 '책가도'를 만나다

'조선 궁중화·민화 걸작'전

삼성미술관 리움이 소장한 ‘호피장막도’ /사진제공=예술의전당삼성미술관 리움이 소장한 ‘호피장막도’ /사진제공=예술의전당


해·달·산이 그려진 ‘일월오봉도’는 조선 왕의 어좌(御座) 뒤를 감싸고 있던 그림이라 왕권의 상징으로 통한다. 그런데 정조는 1791년 이 그림 대신 책을 잔뜩 그린 ‘책가도(冊架圖)’를 두게 했다. 정조는 ‘책가도’를 가리키며 신하들에게 “경들은 보이는가? 이것은 책이 아니고 그림이다”고 하며 ‘문치(文治)’를 선언하기도 했다.

정조대왕을 중심으로 궁중에서 일어나 양반사회는 물론 민간에까지 유행한 ‘책가도 열풍’, 특히 한 장르의 그림이 사회 전체의 뜨거운 사랑을 받은 사례는 세계사를 통틀어도 유례가 드물다. 이 같은 책가도와 18세기 이후 조선의 문자도 등 민화 걸작 58점을 모은 ‘조선 궁중화·민화 걸작-문자도(文字圖)·책거리(冊巨里)’ 전이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8월 28일까지 열린다.


‘책거리(冊巨里)’는 서가(책장)을 그린 ‘책가도’ 외에 서가없이 책을 쌓아두고 문방구·화병·도자기 등을 주변에 그린 것까지 총칭한다. 원래는 17세기 이탈리아에서 서재를 그린 ‘스투디올로(studiolo)’가 유럽을 거쳐 청나라로 넘어와 ‘다보각경’이 됐고, 이것을 18세기 북학파가 청나라 문물을 들여오면서 조선에까지 수입됐다. 르네상스 시대에 도입된 ‘선투시도법’을 조선의 책가도에서 볼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한국의 책거리 화풍은 독자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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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의 의미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경기도박물관, 삼성미술관 리움, 서울미술관 등 국공립박물관과 사립미술관이 소장한 명품 책거리가 처음 한자리에 모였다는 사실이다. 서예박물관과 현대화랑이 공동으로 기획했다. 화려한 색채와 유럽산 도자기와 골동품, 찻잔·안경·공작깃털 같은 청 문물 등 다양한 기물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8폭 병풍으로 제작돼 리움이 소장한 ‘호피장막도’는 드리운 호피를 걷고 호기심의 눈으로 들여다본 방 안 풍경이 책거리 형식으로 그려져 있다. 표범가죽을 사실적으로 그린 ‘호피도’의 일부를 뜯어내고 그 자리에 서재 풍경을 그려넣은 것이라 전한다. 이동국 예술의전당 서예부장은 “책과 문자는 유일한 출세의 수단이자 교화의 방법이었고 나중에 신분제가 흔들리면서는 돈으로 양반 신분을 산 사람들이 ‘신분세탁’을 위한 일종의 지적인 배경으로 고상한 취향의 책거리 병풍을 애호한 것”이라며 “임금부터 양반, 서민까지 책거리 그림을 통해 격변기 각자의 욕망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서울 전시가 끝나면 뉴욕 스토니부룩대 찰스왕센터, 캔자스대 스펜서박물관, 클리블랜드미술관까지 1년간 미국 순회전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02)580-1300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책가도’ /사진제공=예술의전당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책가도’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전시에 출품된 ‘문자도’ /사진제공=예술의전당전시에 출품된 ‘문자도’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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