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국책硏이 체육단체와 동급? 공공기관 분류규제에 발목 잡힌 정부 R&D

출연硏 27곳 '기타공공기관' 지정

강원랜드 등과 동일한 감독 받아

경영자율권 줄어 장기연구 난망

급여 문제로 인재 확보도 어려워





#. 주요 정부출연연구기관 간부인 A씨는 요즘 퇴근할 때면 마음이 착잡하다. 과거 밤 늦도록 꺼지지 않던 연구사무실들의 전등불이 요즘엔 저녁 6시만 넘으면 상당수 꺼져 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기 때문이다. 기초연구분야에 대한 정부의 오랜 홀대에 실망한 연구원들이 차라리 개인의 후생을 챙기자며 ‘칼 퇴근’하는 경우가 늘어난 데 따른 풍경이라고 A씨는 하소연했다.

정부가 기초과학 등에 대한 연구개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연일 홍보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선 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정부가 미래 신기술확보의 원천이 될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을 카지노 시설과 동급으로 취급하며 연구와 기관운영의 자율성을 빼앗고 있다. 바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의 획일적인 규제다.


공운법은 공공기관들을 자체수입비율 등의 기준에 따라 ‘공기업’이나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기획재정부는 현재 27개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을 모두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해 놓은 상태다. 기타공공기관에는 정부출연연 뿐 아니라 카지노사업자인 강원랜드, 88관광개발, 재외동포재단, 태권도진흥재단, 한식재단, 어촌어항협회 등 과학기술과 전혀 관계가 없는 곳들도 대거 포함돼 있다. 특히 강원랜드와 같은 일부 기타공공기관들이 방만경영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자 정부가 기타공공기관의 경영감시를 싸잡아 강화하면서 출연연들까지도 도매금으로 규강화된 규제에 묶여 자율적인 운영을 하기 어렵게 됐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원래 공운법상 기타공공기관의 분류를 둔 것은 준정부기관이나 공기업보다 더 자율적인 경영을 장려해 각자의 업무 분야의 특성에 맞게 성과를 내라는 취지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은 이 같은 법 취지는 사실상 사문화됐고 기타공공기관이든, 공기업이든 똑같이 자율경영이 어렵게 됐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출연연들이 이처럼 획일적인 경영감독의 잣대에 묶이면서 단기간에 연구성과를 내기 어려운 장기 기초연구 과제를 추진하거는 한층 어렵게 됐다. 또 다른 출연연 관계자는 “기초연구라는 것 자체가 경제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분야여서 그 특수성을 인정해줘야 하는데 관광사업처럼 일반 수익사업을 벌이는 기관들과 동급으로 기타공공기관에 묶여서 비슷한 경영효율화의 잣대로 운영평가나 감사를 받다 보니 어려움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기초연구분야의 인재확충에도 장애가 되고 있다는 하소연도 적지 않다. 한 국책연구기관장은 “기업들과 함께 핵심 기술을 개발하려고 민간분야 연구인력을 일정 기간 모셔와 협업하려고 했더니 우리 연구원들 4~5명 몸값(연간 급여)을 치러야 해서 망설인 적이 있다”며 “좋은 인재를 쓰려면 그만큼 대접을 해줘야 하는데 현행 공운법상 틀에 묶여서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출연연 관계자들은 이 같은 딜레마를 풀기 위해선 출연연들은 공운법 적용에서 아예 제외하거나 출연연들의 업무 특성에 맞는 별도의 공공기관 분류를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관계부처들도 이 같은 문제를 알고 있지만 해법 마련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공운법을 담당하는 기재부나 출연연들을 관장하는 미래창조과학부 모두 강원랜드와 출연연을 동급에 놓고 경영감독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다”며 “단기간에 이런 문제가 해소될 것 같지는 않다”고 내다봤다.

민병권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