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칼럼] 총수의 책임론

김영기 산업부장

총수 사재출연, 합목적성 필요

한진해운 채권단 압박 너무 투박

"있으니 내라" 막무가내 접근 안돼





한때 10대그룹의 영광을 누리다가 경영권을 잃어버린 대기업 총수. 그는 수년 전 한 시중은행장과 단둘이 밤을 새우며 술잔을 기울였다. 술자리를 파하려는 순간 총수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다.


“팔라 해서 다 팔았고 사재 내놓으라는 것 다 줬잖소. 내 모든 것, 아니 집까지도 모두 내놓겠소. 그러니 그룹을 살릴 기회를 조금만 더 주쇼.”

“이제 내려놓으시라”며 ‘압박’을 이어가던 행장도 환갑을 넘긴 총수의 애끊는 목소리는 너무 안타까웠다. 하지만 끝내 총수의 요청을 뿌리쳤고 그룹은 통째로 은행에 넘어갔다.

한국 사회에서 ‘총수(總帥)’라는 단어는 다양한 함의를 지닌다. 잘나가는 임원도 단칼에 베어내는 무소불위의 힘을 지니는 한편에 잘못된 결정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것도 총수의 몫이다. 투명성이 요구되는 요즘 환경에서 총수는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존재”이기도 하다. 작고한 정석(靜石) 조중훈 한진 선대 회장은 “사업은 예술”이라고 했지만 이는 속된 말로 ‘잘나갈 때’ 얘기다. 기업이 잘못되는 순간 사업은 ‘목을 조이는 올가미’로 돌변한다.


환란 이후 수많은 기업이 부침을 거듭했고 총수들이 명멸했다. 기업주는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에도 여론의 질타가 가해지는 순간 기업을 떠났다. “대통령이 6개 회사는 내가 맡도록 했다”며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김우중 전 대우 회장조차 결국 집무실을 비워줬다.

관련기사



오너를 질시(嫉視)하는 사회의 눈초리 앞에서 총수들은 그렇게 돈이 필요하면 돈을 내고, 떠나라면 떠났다.

하지만 총수 역시 경영자이고 그들의 행동에는 일정한 ‘합목적성’이 있어야 한다. 여론을 달래기 위해 달콤한 압박을 가할 때도 ‘왜’인지에 대한 확실한 답이 있어야 한다. 돈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막무가내식으로 부실회사에 대규모 사재를 집어넣으라는 것은 사회주의식 접근이나 진배없다. 정책 수행일 때는 더더욱 치밀한 명분과 전략이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한진해운 처리를 둘러싼 당국과 채권은행의 모습은 너무 투박하다.

조양호 한진 회장은 해운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 강한 인물이다. 최은영 전 회장의 부탁이 있었다지만 ‘수송보국’이라는 선대 회장의 뜻을 가슴에 담고 있었기에 흔쾌히 맡을 수 있었다. 지난 1969년 대한항공공사(KAL)를 인수할 당시 반대하는 간부들에게 “밑지면서도 계속해야 하는 사업이 있는 것”이라며 밀어붙인 선대 회장의 뜻은 45년 뒤 해운을 다시 맡게 된 ‘명분’이었다. 2년여 전 한진해운 창립 기념식에 참석해 “창업 역사가 생존과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조 회장의 얼굴에서는 1977년 한진해운을 갓 출항시키던 선대 회장의 모습이 배어났다. 그런 애정이 있었기에 난파 직전의 한진해운을 떠맡아 1조원 넘는 돈을 쏟아부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을 안다면 누구도 한진해운의 생존에 대한 조 회장의 의지를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고민을 부실회사의 꼬리를 떼어내면서도 뻔뻔함을 감추지 않았던 어느 오너와 비슷한 선상에서 평가한다면 너무 가혹하다.

‘변양호 신드롬’에 이어 ‘경남기업 신드롬’에 빠져 한치의 오점도 남기지 않으려 머리를 굴리는 당국과 뱅커들이 조 회장을 향해 “돈을 내놓으라”고 겁박하는 것을 보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다.

이제 며칠 뒤면 한진해운 구조조정 방안이 나올 것이다. 조 회장은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자신의 힘든 입장을 얘기했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노력한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리고 당국과 뱅커들은 조 회장이 내놓은 ‘선물’을 보면서 조용히 미소를 지을 것이다. 지난 수년간 ‘선관(善管)의 의무’를 제대로 하지 못한 자신들의 치부는 깨끗이 잊은 채. /김영기 산업부장 young@sedaily.com

김영기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