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머나 먼 G7



1976년 6월28일 밤, 푸에르토리코의 수도 산 후안 인근 해변 도라노 호텔. 미국의 제럴드 포드 대통령을 비롯한 제임스 켈러헌 영국 수상·지스카르 데스탱 프랑스 대통령·헬뮤드 슈미트 서독 수상·알도 모로 이탈리아 수상·피에르 트뤼도 캐나다 수상·미키 다께오 일본 수상 등 서방 7개국(G7·Group of 7) 정상들이 이틀 간 회의 끝에 공동선언을 내놓았다.

‘산 후안 성명’으로 이름 붙여진 선언은 △인플레 퇴치를 위한 경제 확장 정책 추구 △무역확대를 위한 관세 등 통상장벽 완화 △다자간 무역협정 추진 △동구권과 무역 확대 △에너지 자원의 합리적 이용과 개발 지원 △상호 이익을 바탕으로 하는 부국-빈국간 협력 증진 등 6개 조항을 담았다. 요약하면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국제 협력을 아끼지 말자는 것이었다.


산 후안 성명 이전에도 서방 선진국 정상들은 한 차례 모였었다. 경기 침체 속의 인플레이션, 즉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과 고유가로 자본주의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 아래 1975년 11월 프랑스 파리 외곽 랑부예에서 6개국 정상회담을 가졌었다. 산 후안 성명은 랑부예 성명을 그대로 재확인 한 것이다. 참석한 정상들도 영국만 교체(헤럴드 윌슨→제임스 켈러헌)됐을 뿐이다.

산 후안 성명의 내용 역시 랑부예 성명처럼 추상적인 문구만 나열됐을 뿐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세부조항은 제시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산 후안 정상회담은 의미가 있다. G7의 공식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G7의 애초 시작은 G6(6개국 그룹). 고유가에 공동 대처하자는 프랑스의 제의로 결성됐으나 산 후안 회의부터 캐나다가 추가돼 G7으로 굳어졌다. 캐나다의 경제력이 약하다는 반대가 없지 않았으나 유럽의 독주를 우려한 미국의 추천이 먹혔다.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들의 모임인 G7 출범 40주년. 산 후안 성명은 성과를 거뒀을까. ‘지속성장’이라는 측면에서는 기대 이하다. 그간의 성장이 거품에 의존했다는 분석도 있다. 수많은 파생상품으로 가지를 치며 호황에 일조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대표적이다. 부국과 빈국의 격차확대까지 감안하면 산 후안 성명의 경제성적은 더욱 떨어진다.


G7이 수퍼 파워인 미국을 위해 주요 국가들이 협력하는 창구로 전락한 측면도 없지 않다. G7 출범 10년 후 미국은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이탈리아와 캐나다를 제외한 G5 재무장관 회담을 열어 플라자합의를 이끌어냈다. 서독 마르크화와 일본 엔화의 평가절상을 골자로 하는 플라자합의 이후 엔·달러 환율은 260엔대에서 1987년 말 120엔대로 떨어졌다. 1995년에는 엔화가치가 달러당 79엔대로 주저앉자 G7은 엔저를 유도하자는 역플라자합의에 이르렀다. 플라자합의로 인한 엔고는 1980년 중후반 이후 한국에 3저호황이라는 반사이익을 안겼다. 반대로 역플라자합의는 1997년 외환위기(IMF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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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7이 미국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점은 그자체의 궤적에서 증명된다. 러시아가 포함돼 G8으로 확대됐다가 러시아가 미국과 알력을 빚자 다시 돌아온 게 오늘날의 G7이다. 위상도 예전만 못하다. 40년전 G7은 세계 인구의 14%, 전 세계 총생산(WGDP)의 절반 이상(56%)을 차지했었다. 요즘 이 비중은 각각 10.2%, 35.9%로 떨어졌다. 인구 비중의 경우 향후 10년 이내 한 자리 수로의 하락이 확실시된다.*

체력이 예전 같지 못한 G7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인한 불안을 해소하겠다고 나서는 모양이다. G7의 올해 의장국을 맡고 있는 일본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자국 이기주의 성향이 강한 일본의 지도력이 국제무대에서 과연 통할지 의문이지만 G7이라도 힘을 냈으면 좋겠다. 수출 의존형 경제구조를 갖고 있는 처지에서 G7의 국제무역 위축 차단 의지가 결실을 거두기 바란다.

G7이 제 역할을 못한다면 국제 경제의 주도권을 어떻게 흘러갈까. 미국과 중국간 G2 대화의 비중이 더욱 강해질지, 인도와 브라질 등의 목소리가 높아져 G10이나 G11(G7+중국·러시아·인도·브라질)이 새로 탄생할지 모를 일이다. 한국의 좌표는 어디쯤일까. ‘747’(연 7% 성장·국민소득 4만달러·세계 7대 강국)이라는 장밋빛 전망 아래 G20 정상회의 개최로 경제가 도약하고 국격이 높아졌다고 우쭐거리던 때가 바로 엊그제이건만.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 다만 여기에는 간과할 수 없는 변수가 있다. G7 국가들의 해외투자까지 반영하면 세계의 전체 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64%라는 분석도 있다. 더욱이 G7에 옵서버로 참가하는 EU까지 포함하면 이 비율은 70% 이상에 이른다.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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