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REVIEW]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영국인 빌 쇼는 1986년 열차 사고 를 당했다. 당시 사고로 9명이 숨졌다. 자신이 타고 있던 열차 에서 사고가 난 것은 불운이었지만 살아남은 것은 행운이었다.

15년 후 단순히 행운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 그에게 벌어졌다. 이번에는 그의 아내가 열차 사고를 당한 것이다. 피해 규모도 비슷해 모두 10명이 사망했다. 두 사고 모두 선로를 가로막은 자동차 때문에 일어났다.

영화배우 앤서니 홉킨스는 자신이 출연하기로 한 영화의 원작 소설 ‘페트로브카에서 온 소녀’를 사기 위해 서점에 갔지만 책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역에서 버려진 책 한 권을 발견한다. 그 책은 ‘페트로브카에서 온 소녀’였다. 그리고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얼마 뒤 소설의 저자 조지 파이퍼를 만나 당시의 일을 이야기하자 파이퍼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갖고 있던 책을 친구에게 주었는데 친구가 그 책을 지하철에서 잃어버렸다고 하더라.”

홉킨스가 그때 주웠던 책이 파이퍼의 그 책이었다. 거짓말처럼 들리지만 분명한 실화다.

빌 쇼 부부와 앤서니 홉킨스가 겪었던 것처럼 극적이지는 않지만 우리는 늘 크고 작은 우연들을 접하고 산다.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는데 때마침 그 사람에게서 연락이 오거나, 해외 출장을 갔는데 현지 공항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거나, 첫 휴가를 나오는데 위병소에서 다른 남자 면회 온 옛날 여친을 마주치는 그런 일들이 여기에 속한다.

돌아보니 필자에게도 정말 기적 같은 우연이 있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였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 취재를 위해 현장에 있었다. 0-1로 패색이 짙던 후반 종료 직전 나는 프레스룸으로 이동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고, 계단을 내려가는 순간 함성을 들었다. 종료 직전 설기현의 동점 골이 터진 것이었다. 안정환의 역전 골든골도 프레스룸 TV로 지켜봐야 했다.

지금도 필자는 자조하듯 이렇게 말한다. “그런 역사적인 날, 현장에 있으면서도 TV로 한국의 승리를 지켜본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 그런데 계속 봤으면 졌을 거야.”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 내가 보지 못한 폴란드전과 포르투갈전은 이겼고, 내가 본 유일한 조별리그였던 미국전은 비겼으니까. 경기를 보면 지고, 안 보면 이기는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지만 뜻밖에도 이런 징크스로 고민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의 과학적 함의
우연을 수치화하고, 우연에서 법칙을 찾으려는 일군의 과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우연이 자연을 근본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 불확정성이 자연의 중심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는 결국 우연과 불확정성이 지배하는 우주에서 살고 있다. 치열한 논쟁 끝에 현대과학에서도 이것을 일반적인 견해로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전제가 있다. 그 우연조차 고유한 법칙이 지배한다는 사실이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발생 확률이 극히 미미한 일들에 대한 과학적 해석을 담은 책이다. 우연의 법칙(improbability principle), 이를테면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는 말이 얼마나 큰 과학적 함의가 내포되어 있는지 설명하는 책이다.

이 책이 주목받는 이유는 아무래도 로또나 홀인원 같은 행운을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는지 알고 싶기 때문인 것 같다. 벼락을 맞거나 사고가 날 비행기를 타는 불운을 피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도 이 책을 읽는 듯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에선 그런 답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로또에 당첨되거나 벼락에 맞을 확률을 계산하고 그것을 기대하거나 피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를 과학적으로 말해줄 뿐이다.

그렇다고 너무 실망하지는 말자. 이 책을 읽는다고 로또에 당첨될 방법을 찾거나 나에게 찾아올 불행을 막을 수는 없지만, 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우연한 일들에 혼란스러워하지 않을 수는 있다. ‘왜 나에게만 이런 불행한 일이 벌어지느냐’는 나약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하여 기적으로 불리는 일들조차 실상은 예상된 법칙에 의해 발생하는 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지 못할 때 인간은 도박과 같은 요행, 부질없는 미신, 비과학적인 예언, 교조적인 종교에 빠져들게 마련이다. 저자는 우연의 법칙이 갖는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만약 좀처럼 개연성이 없어 보이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인류뿐 아니라 은하도 생겨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 비개연적 사건이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것이 우주의 실상이다. 극히 이례적인 일도 일어날 수밖에 없고 확률이 0에 가까운 사건 또한 일어난다. 우연의 법칙은 그런 사건이 전혀 일어날 법하지 않다는 점과 그런데도 계속 일어난다는 사실이 이루는 외견상의 모순을 해결해준다.”






우연을 설명하는 ‘우연의 법칙’
물론 로또 복권에 100% 당첨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1992년 미국 버지니아주에선 몇 주 동안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1등 당첨금이 2,700만 달러로 불어나는 일이 일어났다. 그러자 소액 투자자 2,500명으로 구성된 자칭 ‘국제로또펀드’라는 집단이 꾸려졌다. 그들은 돈을 모아 로또 복권 500만장을 사들였다. 당시 로또 당첨 확률은 약 705만분의 1로 이들의 당첨 확률은 7분의 5였다. 결국 이들이 구입한 복권 가운데 한 장이 1등에 당첨됐다.

이것은 첫 번째 우연의 법칙인 ‘필연성의 법칙’에 해당한다.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발생 가능한 모든 결과의 목록을 완전하게 작성한다면, 그 결과 중 하나는 반드시 일어난다. 국제로또펀드 투자자들은 이 법칙을 몰랐지만 발행된 복권을 모조리 사들이면 로또에 당첨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필연성의 법칙을 이용해 이익을 얻은 대표적인 사례다.

로또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 에벌린 마리 애덤스라는 사람은 1985년 미국 뉴저지주 로또에서 4개월 간격으로 두 번이나 1등에 당첨됐다. 기적과 같은 행운으로 그녀는 총 540만 달러를 손에 쥐었다. 그 로또에서 4개월 동안 두 번이나 당첨될 확률은 1조분의 1이었다.

두 번째 우연의 법칙이 이 같은 ‘아주 큰 수의 법칙’이다. 아주 많은 기회가 있으면 설령 특정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아무리 낮더라도 그 사건이 일어나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첨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일 또 로또를 사는 이유는 우리가 이 법칙을 무의식중에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 번째 우연의 법칙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선택의 법칙’이다. 성공적인 결과만을 선택해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다. 필연성의 법칙에 따라 예측된 패턴 중 하나는 맞을 수밖에 없다. 그런 다음 선택의 법칙을 적용해 들어맞은 예측을 증거로 내놓으면 된다.

‘나비의 날갯짓이 토네이도를 일으킨다’는 비유로 설명할 수 있는 네 번째 ‘확률 지렛대의 법칙’, 일치의 기준을 완화해 외견상 우연의 일치가 일어날 확률을 높이는 다섯 번째 ‘충분함의 법칙’까지 포함하면 우연의 법칙은 모두 5개가 된다.






신은 정말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을까?
이처럼 우리가 우연이라고 믿는 것도 결국은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은 없다. 기적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연을 ‘특별한 일’이 아니라 ‘보편적인 일’로 간주하는 것, 그게 과학의 출발점이다. 만약 우연을 특별한 일(혹은 기적적인 일)로만 간주했다면 인간은 조금도 진보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가 수많은 사례를 언급하며 우연의 법칙을 강변한 이유다.






“우리가 지구에서 관찰하는 물리학 법칙들은 우리에게만 적용되는 특별한 법칙들이라기보다 우주의 다른 곳에도 적용되는 평범한 법칙들이다. (…)이제 지구가 태양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에서 출발하여 일상을 지배하는 물리학 법칙들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한국어판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원제 Improbability Principle)’의 제목은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다. 그는 1927년 10월 닐 보어와 양자역학을 두고 집중적인 논쟁을 벌였다. 양자이론을 신뢰하지 않던 아인슈타인은 이때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뒤 그 말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은 예측 불가능하고 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그리고 필자 또한 틀렸다. 2002 월드컵 16강전에서 한국이 이탈리아를 꺾은 것은 내가 직접 보지 않아서가 아니다.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편집부/과학칼럼니스트 김형석 blade31@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