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조만간 다중대표소송제 도입과 소액주주에 이사선임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 등을 핵심으로 하는 상법 개정안을 발의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비상한 관심이 모아진다. 김종인 대표가 자신을 대표하는 ‘브랜드’나 다름없는 경제민주화 행보에 본격 나서는 셈인데 여당과 재계에서는 “기업 부담이 일시에 급증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어 실제 법안 통과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김종인 대표실의 한 관계자는 28일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법안 내용을 놓고 당 정책 라인과 최종 조율을 하고 있다”며 “이번주 중 김종인 대표가 법안을 대표발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례대표만 다섯 번째인 김종인 대표가 법안 대표발의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제민주화’를 총선 승리를 위한 슬로건으로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철학을 국내 산업계에 이식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반을 닦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해당 법안에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집중투표제 의무화 △이사 및 감사위원 분리 선임 △전자투표제 의무화 등의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다중대표소송제도는 자회사 또는 손자회사 경영진의 불법행위로 회사가 손해를 입었을 때 모회사의 주주들이 직접 해당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미 개정 상법에 도입된 집중투표제의 경우 3%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소액주주가 요청하면 이사 선출을 위한 주주총회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는 개별 회사가 정관에 이를 배제하는 조항을 두는 것 역시 허용하기 때문에 사실상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김종인 대표의 상법 개정안은 이 제도의 도입을 의무화해 소액주주에게 이사 선임 권한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사·감사위원 분리 선출은 재벌 총수 일가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감사위원 선임을 위해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들 내용은 지난 2013년 법무부가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바탕으로 한 상법 개정안을 정부입법으로 제출했으나 재계의 반발에 가로막혀 유야무야됐다.
앞서 김종인 대표는 21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의회의 본분은 거대경제세력을 견제하는 것이다. 재벌 총수의 전횡을 막기 위해 의사결정 과정을 민주화하고 대기업의 반칙과 횡포를 막는 것이 시급하다”며 경제민주화 입법의 밑그림을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과 재계는 김종인 대표의 구상에 대해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상법을 다루는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인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은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충분한 여론 수렴과 심사숙고가 필요한 법안이다. 기업의 반대를 감안하면 법안 통과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법사위의 현재 구성상(여당 7명, 야당 10명) 야당이 한데 힘을 뭉쳐도 국회선진화법이 요구하는 상임위 정족수(재적위원 5분의3)에 못 미친다.
경제단체의 한 고위관계자도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금과 같이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시기에는 기업친화적 정책을 쓰는 게 정석”이라며 “산업계의 부담 가중이 불 보듯 뻔한 법안은 수용하기 힘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