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신격호 치매약 복용에 미궁 빠진 '형제의 난'

신동주측 돌연 치매약 복용 사실 공개

법원 인정 땐 법적대리인 지위 박탈

거짓말 논란으로 경영권분쟁 불리 불구

"검찰 칼끝 동빈 향하게" 고육책 분석도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지난 2010년께부터 치매 치료제를 복용해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1년을 끌어온 롯데가(家) ‘형제의 난’에도 작지 않은 파장이 예고됐다.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SDJ코퍼레이션 회장) 측은 28일 신격호 회장의 치매약 복용 사실을 돌연 언론에 공개했으며 신격호 회장의 성년후견인 청구를 심판하는 있는 서울가정법원 역시 투약기록 등을 넘겨받아 내용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29일 알려졌다.


우선 장남인 신동주 전 부회장은 사실상 경영권 분쟁의 동력을 잃을 가능성이 커졌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그동안 ‘아버지의 뜻’을 앞세워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28.1%를 가진 최대주주 광윤사의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뒤 롯데홀딩스 주총을 세 차례나 소집하며 신동빈 롯데 회장을 압박해왔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롯데그룹의 사실상 지주사 격인 회사로 이곳을 장악하면 롯데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

하지만 신격호 회장의 정신이 온전치 않은 상태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이 아버지의 ‘위임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될 경우 더 이상 경영권 분쟁을 이어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법원이 신격호 회장의 치매 사실을 인정해 제3의 성년후견인을 지정할 경우 신동주 전 부회장의 법적 대리인 지위가 박탈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렇게 되면 신동주 전 부회장이 한국과 일본에서 롯데를 상대로 진행하고 있는 소송의 상당수도 무효가 될 수 있다. 신격호 회장의 넷째 여동생인 신정숙씨는 이에 앞서 지난해 말 신격호 회장의 성년후견인 지정을 법원에 청구한 바 있으며 후견인 후보로는 신격호 회장의 부인과 신동주·동빈 형제를 비롯한 일가족을 모두 지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재판부는 후보 지명 여부와 관계없이 제3의 인물을 후견인으로 지정할 수도 있다.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이 정신감정을 받기 위해 지난달 16일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에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이 정신감정을 받기 위해 지난달 16일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에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거짓말 논란도 부담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은 그동안 부친인 신격호 회장의 정신이 온전하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최근 검찰이 롯데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들어가자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은 “신격호 회장이 ‘잘못이 있다면 나도 검찰에 고발하라. 내 딸 신영자도 철저히 수사하라’고 말했다”고 언론에 밝혔고 지난해 12월에는 신격호 회장과 프로 바둑기사인 조치훈 9단의 대국장면까지 공개한 바 있다. 신격호 회장의 치매설이 사실일 경우 고의적인 거짓말 논란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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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이 이 같은 불리함을 감수하고 치매약 복용 사실을 확인해준 이유가 무엇이냐는 점이다. 현시점에서는 나날이 좁혀들어오는 검찰 수사의 예봉을 신동빈 회장 측으로 돌리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검찰이 롯데그룹 전반의 비리의혹을 조사하고 있는 가운데 신격호 회장이 치매였다는 사실이 확인될 경우 모든 책임은 한국 경영을 총괄해온 신동빈 회장 측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말실수’ 설(說)도 제기된다.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의 한 변호사가 언론 취재 과정에서 ‘실수’로 치매약 복용 사실을 인정했다가 여파가 커지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은 이날 “치매약을 예방 차원에서 복용할 수 있고 치매약을 먹었다고 해서 치매에 걸린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한편 신동빈 회장 측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일단 경영권 분쟁 측면만 두고 보면 유리한 고지에 섰지만 검찰 수사 측면에서는 입지가 더욱 좁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치매인 것이 최종 확인될 경우 모든 책임을 신동빈 회장이 질 수밖에 없다. 롯데그룹은 이날 공식 입장을 통해 “신격호 회장의 약물치료 내역이 SDJ 측에 의해 언론에 유포된 것과 관련해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며 “의료 내역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임에도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치료기간, 약물 내용까지 공개한 것은 금도를 넘은 불법 개인정보 유포 행위”라고 비판했다.

서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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