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위로부터 시작된 개헌논의의 함정

온종훈 논설위원

개헌, 국민적 공감대 형성 부족

'양당체제 고착 목적' 음모론도

의견 수렴 없이 섣불리 추진땐

브렉시트처럼 국론 분열 가능성





“집권 말기 지도자는 더이상 보상이나 처벌을 할 수 없어 그동안 유지해온 국정운영 주도권을 급속하게 잃게 된다.”


로런스 서머스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지난 2014년 8월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에서 미국 집권 2기 대통령들의 레임덕이 고착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당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이슬람국가(IS)에 대한 대처 실패 등으로 9·11 이후 10여년 만에 다시 ‘테러와의 전쟁’에 휘말려 들고 있었으며 경제 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국정 지지율이 최악 수준을 기록하고 있었다. 서머스 교수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후 조지 W 부시까지 역대 재임 대통령이 2기 임기에는 정책 추진도 못하고 국내외적으로 터져 나오는 문제로 정치적으로 초라한 상태에서 마감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집권 2기의 저주’라고 했고 이로 인해 미국 사회가 입은 피해를 ‘잃어버린 40년’이라고 까지 했다. 서머스의 제안은 재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6년 단임제 도입이었다.

이와 정반대로 우리는 대통령 단임제를 폐기하기 위한 현행 헌법 개정 논의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야당 출신으로는 14년 만에 선출된 정세균 국회의장이 13일 개원연설에서 “개헌은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며 이른바 ‘87년 체제’의 변화, 즉 헌법 개정 문제를 들고 나왔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당장 친정인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가 즉각 동의했고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에서도 당론은 아니더라도 유력 정치인들의 지지가 이어지면서 개헌은 20대 국회 최대 어젠다로 부상한다.


시작 단계여서 개헌 방식에 대한 의견은 아직 백가쟁명인 상태다. 미국식 4년 대통령 중임제, 대통령과 총리가 권한을 나누는 분권형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등 권력의 형태뿐 아니라 국회의원 선출 방식도 소선거구제에서 대선거구제로 바꾸자는 의견까지 다양하다. 이 중 가장 선호되는 권력구조 개편 방향은 미국식 대통령 4년 중임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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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개헌 논의의 출발이 이른바 ‘87년 체제’의 지난 30년 동안 드러난 단임제의 폐해가 컸다는 문제의식이기 때문이다. 역대 단임제 대통령은 예외 없이 집권 기간 중에 레임덕 현상을 겪었다. 군사정권의 장기 독재를 막겠다며 도입한 제도였지만 5년 권력의 시한을 미리 정함으로써 레임덕 조기화, 국정 연속성 중단, 책임 정치 실종 등의 예기치 않은 문제를 곳곳에서 노출했다. 여기에 대통령을 보좌할 공직사회는 아예 대통령 5년 임기의 시간표에 맞춰 일할 때와 복지부동(伏地不動)의 시간을 미리 정하는 ‘관성화 현상’까지 나타났다.

그렇다고 서머스의 지적에서 보듯 단임제의 폐해를 막기 위한 중임제 또한 만병통치는 아니다. 대통령 단임제의 ‘역사적 효용’이 끝났다고 해 곧바로 중임제가 답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최근 개헌 논의의 진원지와 주된 축이 기성 정치권이라는 것도 문제다. 개헌은 당적을 가릴 것 없이 정치권의 오랜 숙원이었지만 이에 대한 국민적 이해나 공감대 형성이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 특히 개헌 방식의 하나로 거론되는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 등에 대해서는 대다수의 국민은 양당 체제를 고착화하려는 정치권의 음모 등으로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헌법 개정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국민투표 또한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위로부터 시작된 개헌 논의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을 생각하면 국민투표를 통과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높지 않다. 영국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국민투표에서 보듯 최근 각국의 주요 투표 결과는 대부분 찬반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과반 투표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국민투표를 통한 개헌이 실패한다면 개헌 논의는 수십 년 더 미뤄질 수밖에 없고 이에 따른 국론 분열까지 우려해야 할 상황이다.

결국 국가의 기본인 헌법을 바꾸는 일인데 일종의 ‘그들만의 리그’인 정치권에서만 논의해서는 안 된다. 국회나 현 정권의 이해에서 벗어난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제3지대에서 개헌의 필요 이유와 명분을 재점검하고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국민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의 개헌 추진은 단임제의 폐해를 막겠다는 본래 취지는 사라지고 오히려 국론 분열의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온종훈 논설위원 jhohn@sedaily.com

온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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