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떠나도 유럽연합(EU)의 나머지 27개국 간 통합은 유지될 것이라는 EU 지도부의 장담과 달리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 직후 우려됐던 EU 내부 갈등이 이달 들어 본격적으로 표면화하기 시작했다. 취약한 은행 시스템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탈리아는 독일과 EU의 강력한 경고에도 취약한 자국 은행들에 수십억유로의 공적자금 투입을 강행할 태세다. 독일 정가에서는 영국이 EU를 탈퇴해도 실리를 중시해 영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EU 결속 강화를 주장하는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 축출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브렉시트로 불거진 EU 분열의 틈새는 시간이 지날수록 빠르게 벌어지는 모양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3일(현지시간) 메르켈 총리가 브렉시트 결정을 계기로 영국을 배제하고 나머지 EU 국가들의 통합을 강화하려는 융커 위원장의 태도에 격노하고 있으며 내년 안에 융커 위원장 축출에 나설 것이라고 익명의 독일 장관을 이용해 보도했다. 앞서 동유럽 회원국인 체코와 폴란드·헝가리 등이 융커 위원장의 ‘통합주의’가 브렉시트 사태를 초래한 원인이라며 그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한 적은 있지만 EU 최강국인 독일이 합류할 경우 EU는 심각한 내홍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 텔레그래프는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융커 위원장과 마찬가지로 EU 통합에 힘을 싣는 반면 유럽 내 재정취약국에 대해 더 이상의 구제금융 지원 부담을 원치 않는 독일은 폴란드 등 동유럽 및 발트해 연안 국가들과 손잡고 반대노선을 구축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가 하면 이탈리아는 은행권에 대한 EU의 규제에 노골적인 반기를 들고 나섰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가 취약한 자국 은행 시스템에 수십억유로의 공적자금을 수혈할 준비가 돼 있다고 4일 보도했다. EU는 은행에 부실이 발생할 경우 납세자가 아닌 채권자가 구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각국 정부가 개별적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EU와 독일은 회원국의 독자적 행동은 EU가 새로 도입한 은행 규정의 신뢰도를 해칠 것이라며 렌치 총리가 계획 중인 공적자금 투입이 규정 위반이라고 경고했지만 렌치 총리는 “학교 선생님의 훈계는 듣지 않겠다”며 독자개입 단행을 결심한 상태라고 FT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