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얼굴 몰아주기와 일감 몰아주기

임채운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연예인의 ‘얼굴 몰아주기’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얼굴 몰아주기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주인공 한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약속을 어기고 예쁘게 보이려 한다면 주인공은 애매해지고 사진의 균형은 무너진다. 상대방을 위한다는 마음과 약속을 충실히 지키겠다는 의지, 그리고 신뢰가 분명히 있어야만 한다.


신뢰를 바탕으로 모두를 돋보이게 하는 얼굴 몰아주기를 보면서 다른 모습의 몰아주기를 떠올렸다. 대기업집단의 몰아주기 사례이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5개 대기업 집단을 일감 몰아주기 의혹으로 동시에 조사하고 있다.

대기업집단의 일감 몰아주기는 그룹 내 계열사 간 서로 돈이 되는 사업을 몰아주는 것이다. 상호 부동산 저가 임대를 통한 수익창출, 매입 또는 매출제품에 대한 가격조정을 통한 부당지원, 기존 거래관계에 지원기업 끼워 넣기 등 사례도 천태만상이다. 일감 몰아주기는 비관련 기업의 참여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해 시장경쟁을 무력화시키는 불공정행위이다.


이는 경쟁기업의 생존을 위태롭게 할 수 있으며 결국 건전한 기업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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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견실한 전문 중견기업이 출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장애요인도 내부시장을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관행 때문이다. 광고·정보기술(IT)·물류 등의 사업서비스도 대기업들이 모두 계열사를 설립해 일감 몰아주기로 운영하고 있는 현실이다. 안정적인 일감이 보장된 계열사는 혁신과 효율화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어 방만하게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기업집단의 그릇된 몰아주기 행태는 부의 독점을 통해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천민자본주의의 민낯을 보여준다. 산업 전반의 활력뿐만 아니라 기업 내부적인 경쟁력도 저해하는 일감 몰아주기는 결국 우리 경제를 병들게 하고 기업 자신도 죽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러한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조세법 개정을 통해 규제가 시행되고 있다. 이른바 ‘일감 몰아주기 과세’ 제도다. 계열사 내부거래 비중이 연 매출의 30%를 넘는 수혜 법인, 즉 일감을 받은 기업의 지배주주나 친인척 가운데 3% 이상 지분을 보유한 이들에게 증여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대기업집단의 일감 몰아주기는 앞서 말한 연예인의 얼굴 몰아주기와는 상반되는 심리가 깔려 있다. 전자가 모두를 죽이고 혼자 살기 위한 이기적인 것이라면 후자는 모두를 살리기 위한 신뢰와 배려의 산물이다. ‘모든 위대한 사업은 믿음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말처럼 이 사회와 기업생태계를 건강하게 하는 힘은 바로 얼굴 몰아주기처럼 서로 상대방을 위해 배려하는 마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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