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저금리에도 불구하고 은행 빚을 갚지 못해 개인 채무조정에 나서는 사람들은 되레 늘어나고 있다. 금리 부담보다 당장 수입 감소가 원인으로 저소득층, 40대의 부담이 특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지난 1·4분기 2만4,600여명이 신용회복위원회에 채무조정을 신청했다. 이는 2013년 4·4분기(2만5,000명) 이후 가장 많다. 지난해 3·4분기 2만1,900명까지 줄었던 분기별 채무조정 신청자 수는 최근 2분기 연속 오름세가 이어지고 있다. 신복위의 채무조정은 3개월 이상 금융기관 채무를 연체하고 있는 채무자에게 이자 감면은 물론 원금까지 조정해주는 ‘개인워크아웃’과 연체기간이 한 달 이상, 90일 미만인 채무자에게 이자 부담을 줄여주는 ‘프리 워크아웃’으로 구분된다.
문제는 채무조정을 신청한 사람들 대부분이 저소득층이라는 점이다. 신복위에 따르면 올 1·4분기 기준 개인워크아웃 신청자 중 월소득이 150만원 이하인 경우가 전체의 73.5%를 차지했다. 반면 월소득이 200만~300만원인 신청자는 7.7%, 300만원을 넘는 신청자는 2.0%에 불과했다. 부채 규모를 놓고 보더라도 전체 신청자의 절반 가까이(49.0%)가 2,000만원 이하의 적은 부채에도 불구하고 원금은 물론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대별로는 40대가 34.9%로 가장 많고 30대가 30.4%를 차지하는 등 가계의 주 소득원인 30~40대 가장이 대부분이었다. 30~40대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채무 부담이 늘어난 것은 경기 침체로 수입이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신청자 대부분의 채무가 많지 않고 시중금리마저 바닥 수준이지만 빚을 갚을 원천인 소득이 더 크게 쪼그라들었다는 얘기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 침체로 소득 자체가 쪼그라들고 있는 상황에서 서민들은 이자 부담이 줄어든 것을 피부로 느끼기가 힘들다”며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경기 부양책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법원의 개인파산 신청보다 신복위의 채무조정 신청이 더 가파르게 늘어나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은에 따르면 1·4분기 신복위 워크아웃과 법원의 개인파산을 포함한 채무조정 신청 중 워크아웃 비중은 40.7%로 1년 전보다 2.3%포인트 늘었다. 법원에 신청하는 개인파산은 주로 개인사업을 통해 막대한 빚을 지게 된 경우를 포함해 채무 원금의 일부를 조정하는 것으로는 회생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대부분이다. 반면 신복위에 채무조정을 신청하는 사람들은 개인사업자라기보다는 직장이 불안전한 저소득층이 많다. 금융업계 고위관계자는 “채무 자체가 많지 않지만 변호사 비용조차 감당하기 힘든 취약계층일수록 법원보다는 신복위를 찾는 경우가 많다”며 “전체 채무조정 중 워크아웃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취약계층의 부담이 늘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