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소야대의 국회 상황에서 두 야당이 경제민주화를 명분으로 한 각종 기업규제 법안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여당이 이를 저지하는 데 전혀 힘을 쓰지 못하면서 입법화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축구에 비유하자면 골키퍼는 있지만 움직임이 극히 둔해져 웬만한 슈팅은 골인되는 상황인 셈이다. 기업규제 법안은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한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고 있다.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4일 다중대표소송제와 집중투표제 도입, 사외이사 임기제한 등을 내용으로 한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에 앞서 더민주는 기업들의 초과이익을 협력업체와 나누는 이른바 초과이익공유제 도입을 위한 근거를 마련하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또 공공기관의 청년의무고용 비율을 현행 3%에서 5%로 확대하고 이를 300인 이상 대기업에까지 적용하는 내용의 청년고용촉진특별법 개정안도 국민의당과 공동 발의한 상태다. 이들 법안은 기업들이 민감해하면서 지속적으로 반대해온 대표적인 것들이다. 나아가 김종인 대표는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분식회계와 관련해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대한 국회 차원의 조사도 촉구했다.
그러나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이 같은 야당의 거센 공세에 맥을 못 추고 있다. 가뜩이나 취약한 리더십에다 오는 8월9일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경쟁과 계파갈등에 여념이 없어 야당의 주장을 반박할 반대논리를 개발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당내 경제통들도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소신을 강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여당 의원은 정부 공격의 전면에 나서는가 하면 김세연 새누리당 의원은 김종인 대표의 상법개정안에 공동발의자로 참여하기 까지 했다.
이처럼 여당 의원들이 각자 플레이를 하고 있지만 비대위 체제의 당은 이를 자제시킬 리더십을 가지기는커녕 당권경쟁의 유불리만 따지는 소아병적 논쟁을 거듭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야당의 경제민주화 입법 추진에 브레이크가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는 자조가 여당 내에서 나오고 있다.
한 경제단체 임원은 “(경제민주화 입법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여당이 기업이나 시장의 혼란이 없게 무게중심을 잡아줘야 하는데 지금 여당이 하는 걸 보면 공포를 느낄 정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