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도산전문법원 설립 다시 추진한다

2014년 설립안 논의하다 정책 우선순위 밀려 무산

법원내부 폭넓은 공감대 "20대국회서 발의 가능할 것"

산업·금융계 "기업구조조정=법정관리 도식화 우려"

법원이 도산전문법원(이하 도산법원) 설립을 다시 추진한다.



기업 구조조정 수요가 커지는 데다 채권단 중심인 워크아웃의 부작용이 드러나면서 법원이 2년 전 추진하다 서랍 속에 넣어뒀던 도산법원 설립 계획안을 다시 꺼내 들었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의원입법을 통해 도산법원을 설립한다는 쪽으로 정책의 가닥을 잡고 20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협의에 나설 계획이다. 법원 관계자는 “지난 19대 국회에서 도산법원 설립 안이 논의됐는데 도산법원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회기가 끝나면서 자연스럽게 논의가 중단된 만큼 20대 국회에서 발의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법사위 활동이 본격화되면 논의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도산법원 설립 재추진 방안은 이미 법원행정처뿐만 아니라 중앙지방법원 등 법원 조직 내부에서 이미 폭넓은 공감대를 갖고 있다. 강형주 중앙지방법원장은 지난달 23일 한국자산관리공사(유암코)와 기업회생 관련 업무협력(MOU)을 체결할 당시 행사 관계자들에게 “도산법원은 19대 국회에서는 못했지만 20대 국회에서는 회기 내에 설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산법원은 행정법원이나 특허법원처럼 별도의법원급 조직을 갖추고 기업이나 개인의 회생·파산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법원이다. 미국은 2014년 기준으로 총 97개의 파산법원을 두고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중앙지법 등 9개 법원에서 산하 파산부 형태로 도산 관련 사건을 다루고 있다.

현재 국내 도산 사건은 연 16만건 수준으로 법원 파산부가 처음 생긴 1999년의 910건에서 180배 이상 늘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기업회생 담당 판사는 1명당 7,700억원 수준의 자산을 관리하고 있으며 개인회생 사건은 판사 1명당 연간 1,000명분 이상을 처리하기도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법원 안팎에서는 수년 전부터 도산법원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무엇보다 도산 업무는 법원에서 다루는 사건 가운데서도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로 꼽힌다. 그럼에도 현재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 판사의 근무기간은 원칙적으로 3년이어서 판사들이 전문성을 갖추기에 시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미국 연방 파산법원 판사의 임기는 14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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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법원이 생기면 별도의 인사 체계를 시행할 수 있어서 판사의 근무기간을 보다 길게 조정해 전문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법관뿐만 아니라 채권신고와 접수, 채권조사 및 확정, 채권자 표 작성, 관계인 집회 등 일반 민사사건과 다른 특화된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소속 직원들의 전문성을 높이고 동시에 회계사 등 외부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도 높일 수 있다. 실제로 특허법원은 근무기간 조정과 특허청에서 파견받은 기술심리관의 조력 등을 통해 법관의 전문성을 높였다.

법원은 이러한 이유로 2014년에 도산법원 설립을 논의했지만, 정책 우선순위에 상고법원을 내세우면서 기존 계획을 보류했다. 당시 한국도산법학회 등이 개최한 도산법원 도입 심포지엄에는 현재 법사위원장인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이 참여해 협력을 약속하기도 했다.

특히 최근 도산법원 설립 논리에는 일각에서 나오는 워크아웃 무용론 등 채권단 중심의 한계기업 살리기에 대한 우려나 반발도 짙게 녹아있다. STX의 경우 채권단이 4조원의 공적자금을 쏟아부었음에도 결국 되살아나지 못하고 결국 법정관리로 넘어왔다.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5월 ‘20대 국회에 바란다’는 건의문을 국회에 내면서 도산전문법원 설립을 주요 건의사항 가운데 하나로 제기했다. 산업계에서도 전문성을 갖춘 판사와 관계자들이 위기 기업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회생시키는 게 도움이 된다고 본 셈이다.

전성인 홍익대 법경대학 경제학부 교수는 “사건 수요나 설치 필요성은 충분하고 오히려 시급히 도입해야 할 과제”라며 “도산법원 설치 시 도산 전문 법관의 지위를 어떻게 보장하고, 재직 후 활동을 규율할 윤리규범을 마련하는 등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할 단계”라고 말했다.

법원 관계자는 “불황에 기업의 구조조정 수요가 늘어나고 이에 따라 개인의 사정도 어려워지는 국내 경제 상황과 기업회생제도의 효율성을 고려하면 도산법원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업·금융계 일각에서는 도산법원 설립으로 기업구조조정 정책을 법정관리 중심으로 일원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냈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법원이 채권단 협의 등을 법정관리 틀 안에 넣고 기능을 강화하면 신속한 회생과는 멀어져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건설이나 조선 같은 일부 업종의 경우 법정관리 신청 자체로 신규 수주가 끊기는 구조라 법정관리가 만능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김흥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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