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난파선이 뭍으로 끌어 올려졌다. 웅장한 규모가 위용을 자랑하지만 표면 곳곳에는 뜯기고 긁힌 풍파의 흔적이 역력하다. ‘세월호’ 사건을 겪은 우리 사회에서 어느덧 배(船)의 이미지는 어린 목숨을 앗아간 안타까운 희생을 떠올리게 한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이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공동주최한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YAP) 2016’의 당선작 ‘템플’이 공개된 5일에는 공교롭게도 궂은비가 종일 내렸다.
작품명 ‘템플’은 동시대를 뜻하는 템포러리(temporary)와 사원의 템플(temple)을 합성해 만든 조어다. 당선작의 주인공은 건축가 신형철이 이끄는 ‘신스랩 건축’. 신 소장은 프랑스에서 성장해 파리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다. 그는 폐기된 선박을 재료로 내부 공간에 녹지를 조성해 생명이 살아 숨쉬는 휴식공간을 만들었다. 35년 전 모래 운송용으로 제작된 ‘미림 505’는 육지와 제주를 오가며 컨테이너를 나르던 그 역할을 다 한 뒤 이제는 미술관 앞마당의 쉼터가 됐다. 중국에서 배를 수입하려다 비용 문제로 포기하고 대신 목포에서 공수해 왔다.
신형철 소장은 ‘배(船)’를 통해 ‘보지 못하는 눈’을 지적한다. 신 소장은 “‘보지 못하는 눈(Des Yeux qui ne voient pas)’은 현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1887~1965)가 저서 ‘새로운 건축을 향하여’에서 언급한 이미지로, 노트르담 대성당부터 개선문까지 파리의 대표적 명소가 된 건축물을 한 줄로 세워놓으니 그 그림자가 대형 여객선을 이룬 것”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파리에서 건축이라 생각되는 모뉴멘트(기념비)를 보지만 그 뒤에 더 큰 스케일(규모)의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음을 얘기한다”고 설명했다.
심사위원인 션 앤더슨 뉴욕현대미술관 건축·디자인 큐레이터는 “당선작 ‘템플’은 일상을 비롯해 일상에서 간과되고 무시되는 것들을 재구성한 것으로 이는 미술관 안팎에서 다양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지점”이라며 “작품의 형태보다는 현재에 대한 스토리에 주목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평가했다. 건축이자 작품인 ‘템플’은 서울관 앞마당에서 10월3일까지 만날 수 있으며 작업 배경이 된 각종 자료들은 8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글·사진=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