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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휴정PD의 Cinessay] 평범한 남자의 위대한 사랑 <노트북>

사랑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열렬히 사랑에 빠졌을 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온갖 달콤한 약속을 저절로 하게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너만을 위해’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한결같이 사랑할 줄 알았건만, 치약 짜는 습관처럼 소소한 생활의 차이도 견디기 힘들어지죠. ‘너 없으면’ 못살것 같았는데 ‘너 때문에’ 못살 것같은, 나팔꽃보다 짧은 사랑. 그래서 다정한 노부부의 사랑은 그 무엇보다 대단해 보입니다.

화려한 젊음의 시간은 흘러가고, 자식도, 친구도, 명예도 떠나고 심지어 그토록 마음 졸였던 물질도 의미가 다했을 때, 오롯이 옆에 남은 단 한사람. 나의 모든 것을 알고, 나와 모든 것을 함께 한 사람. 한때는 열렬히 서로를 원했고 한때는 치열하게 미워하기도 했지만 그 고비를 모두 넘어서 영원히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지켜낸다는 것은 사실, 영화같은 이야기죠. <노트북>(2004년작, 닉 카사베츠 감독)은 이렇게 영화같은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졌습니다.


노아(라이언 고슬링)와 앨리(레이첼 맥아담즈)는 여러면에서 다릅니다. 성격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 미래를 향한 눈길이 다릅니다. 목수인 노아는 비록 아버지와 단둘이 어렵게 살지만, 화목한 분위기에서 밝게 자란 심지 굳은 청년인데 반해 부잣집 외동딸인 앨리는 명예와 물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온실 속 화초입니다. 노아와 앨리는 그런 모든 차이를 뛰어넘어 열렬히 사랑에 빠지지만, 앨리네 집에서 가만 있을리 없습니다. 노아를 ‘쓰레기’라고 표현하는 앨리 어머니의 독설을 들은 날, 노아는 떠나고 이런저런 오해에 전쟁까지 일어나면서 두 사람은 7년 동안 헤어지게 됩니다. 질풍노도인 청춘기의 7년은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전쟁에서 돌아온 노아는 허전하고 외로운 마음을 앨리가 원했던 집짓는 일에 몰두하며 이겨냅니다. 그 시간, 앨리는 모든 사람의 축복을 한껏 받으며 부잣집 아들 론과 약혼까지 했지만 불쑥불쑥 노아의 모습이 떠오르곤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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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헤어져 있어도 진정 그리워한다면 보이지 않는 끈이 우주속에 드리워지나봅니다. 그러다 앨리는 우연히 신문에서 노아의 사진을 본 후, 한걸음에 노아를 찾아갑니다. 두 사람은 변치않은 사랑을 확인하지만 앨리에게는 약혼자가 있죠. 고민 끝에 앨리는 결국 노아를 선택합니다. 두 사람은 세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지만 앨리는 치매에 걸리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게 됩니다. 노아는 그런 아내 곁에서 두사람의 러브스토리를 담은 일기장을 지극정성으로 매일 읽어줍니다. 하지만 노아 역시 심장병을 앓고 있습니다.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아는 노아는 영원히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내 곁에 눕습니다. 두 손을 꼭잡은 노부부. 그들의 마지막 소원은 기적처럼 이뤄집니다.

영화 속 노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한 여인만을 평생 진심으로 사랑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위대한 일을 이뤄냈다.” 예전같으면 그 일이 그렇게 위대하기까지할까 싶었겠지만, 이제는 100% 공감합니다. 젊었을 때는 산 정상에 오른 사람이 ‘성공’한 것처럼 보였지만, 무사히 하산하지 못하면 사고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인생 마지막에 누가 곁에 남아있는지, 내 마음에 어떤 사랑이 남아있는지가 그 사람의 총체적 인생점수 아닐까요?

조휴정 PD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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